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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살린 조선 소의 근대사 page34~38

일본을 살린 조선 소의 근대사 page34~38

우시장 - '황색 바다'

조선의 풍속을 기록한 옛 사진집에는 반드시 많은 소들이 모여 있는 우시장 풍경이 실려 있다(그림 3, 36쪽).

소시장은 제수용이나 고기용 성우, 육성용 송아지가 팔려나가는 곳이다. 요시다 유지로(吉田雄次郎)의 『朝鮮の移出牛』(1963년)에 따르면, “가축시장에 출전하는 가축의 수는 총계로 많아서 한 해 예상두수 2백 30만 마리 이상에 달하며, 내매할 수 있는 것은 약 60만 마리로 계산된다”고 한다. 당시(1930년) 조선에서 사육되고 있던 소의 총두수는 약 162만 마리였으므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근거하여 계산하면, 모든 소가 평균적으로 연간 14회 이상 가축시장에 출전하여 총두수의 약 37%에서 매매계약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소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은 조선의 농업에서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역용 소에 대한 수요가 컸고, 또한 육성이나 판매 계획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금융을 위한 관습'(요시다, 앞의 책)이 조선에서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과도 큰 관련이 있다.

즉, 농부에게 소는 경영자금이나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비한 '유동자산'이기도 하고,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조선의 소 기본 문헌 외에 선생영조(善生永助)의 '조선의 소 시장, 조선의 시장 분포 상황' 등을 통해 조선의 소 시장의 운영과 거래 실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소시장은 미곡과 생필품을 사고파는 일반시장에 인접한 모양장이 열리는 날에 소시장도 동시에 열렸다.

서울, 평양, 대구 등에서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시장은 일정한 날에 열리는 정기시장 형식으로 음력 '일, 육일', '이, 칠일', '삼, 팔일'로 정해져 있어 원칙적으로 5일 간격으로 매월 여섯 번 열리게 된다.

시장은 각 지역의 군청 등 교통 요충지를 선정해 강변, 길가 등 공터를 활용해 열렸다.

시장의 참가자는 그 지역의 상인, 인근의 생산자, 또는 시장을 따라 각 시장을 순회하는 행상인 등으로, 대규모 시장에서는 참가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그림 4). 이러한 일반 시장에 인접하여 소 시장이 있었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에서 소년기를 보낸 작가 유우아사 가쓰에(湯浅克衛)의 작품에 쌀 소설이 있다. 그 속에서 조선의 시장과 우시장의 활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곡(穀)'(1937년)이라는 단편소설이다. 유아사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수원(경기도)은 서울 남쪽의 요충지로 큰 시장이 두 곳(성내시장과 성외시장)이 있었다. 아마도 그 시장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집에서 내려다보면 언덕에 세워진 대여섯 채의 조선 가옥 너머로 강물이 하얗게 연기를 내뿜고, 그 돌담 너머가 우시장이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은 그냥 막대기 말뚝이 우거진 공터로 ...... 자주 돌차기를 하며 놀았다.

우시장 안쪽에는 무수한 버섯 모양의 짚 지붕이 세워져 있고, 박람회의 잔해와 같은 그 으스스하게 가라앉은 버섯 군락도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네 개의 기둥이 있는 허름한 흙바닥으로 변한다.

문장에 나오는 '김, 타로'는 조선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다. '우시장'은 일반 시장의 간이 상점으로 사용되는 시설이었다.

시장 안쪽에 있는 '무수한 버섯 같은 약재 지붕'은 일반 시장의 간이 상점으로 쓰이는 시설이었다.

시장과 인접한 우시장은 강과 가까워 '소의 급수'에 편리하다. 그 부지에는 '적갈색 땅'도 있는데, 시장 개장일에는 연간 '2만 마리'가 넘는 소들이 농부들과 가격 협상으로 '싸움'을 하듯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조선에서는 '거실'이라고도 불렀다.

그 거실에서는 소상인 '중개상' 대 농민, 혹은 농민과 가격 협상으로 '싸움'을 하듯 고함을 지르고 있다.

요시다 유지로(吉田雄次郎)의 『朝鮮の移出牛』에도 '牛'시장에서는 소시장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소상인 '중개상'과 농민, 혹은 일반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물건을 팔며 손님과 흥정을 반복하고 있다.

시장의 간이 식당에서는 소를 끓인 국물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강변의 우시장에서는 소들도 싸움에 가까운 큰소리에 이끌려 소들도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들의 생활이 활기를 띠었던 시장의 활기를 지금도 유아사의 소품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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