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문화사 6

제6장 예술과 문학이 사랑한 돼지

제6장 예술과 문학이 사랑한 돼지: 상상력의 박물관에 박제된 돼지들

돼지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모순적인 상징성을 부여받은 동물 중 하나이다. 식탁 위에서는 생존을 위한 단백질의 원천으로 군림해 왔으나, 인간의 정신세계 속에서는 때로 탐욕스러운 권력자로, 때로 순수한 생명의 화신으로, 혹은 체제에 저항하는 고독한 영웅으로 변주되어 왔다. 예술과 문학이라는 상상력의 박물관 속에서 돼지가 어떤 모습으로 박제되어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는지 고찰하는 것은 인류 문화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과도 같다.

1.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권력과 탐욕의 우화가 된 돼지들

20세기 정치 문학의 정점으로 꼽히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돼지는 가장 지적이면서도 가장 타락한 존재로 묘사된다. 오웰이 농장의 수많은 동물 중 돼지를 혁명의 주도자이자 독재자로 설정한 것은 돼지의 생물학적 영리함과 식탐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이다.

소설 속 돼지들, 특히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인간의 착취에 맞서 '동물주의'를 제창하며 혁명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권력을 손에 쥔 순간, 이들의 '지능'은 동료를 억압하고 역사를 조작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기만적인 구호는 돼지가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답습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선언이다. 결국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술잔을 든 돼지의 얼굴이 인간의 얼굴과 구별되지 않게 되는 묘사는, 권력이 어떻게 순수한 이념을 부패시키는지에 대한 통렬한 경고이자 돼지라는 동물이 지닌 '탐식'의 이미지를 '권력욕'으로 치환시킨 문학적 성취라 할 수 있다.

2.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 정체성과 자유의 경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서의 돼지는 이전의 우화적 문법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주인공 마르코 파고트는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비행사이다. 그가 스스로 돼지의 형상을 선택한 것은 파시즘이 광기처럼 번지던 1930년대 이탈리아 사회, 즉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시대에 대한 냉소적 저항이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라는 유명한 대사는 역설적으로 돼지라는 외피 속에 갇힌 그의 고결한 영혼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여기서 돼지는 추함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나 이데올로기라는 거대 담론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미학적 삶을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의 초상이다. 인간의 탐욕을 혐오해 돼지가 되기를 자처한 마르코를 통해, 관객은 오히려 누가 진정한 '인간'인가를 묻게 된다. 이는 돼지라는 기호가 지닌 '속됨'을 '성스러움'이나 '순수함'의 반어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사례이다.

3. 《샬롯의 거미줄》과 《꼬마 돼지 베이브》: 생명에 대한 경외와 공감

아동 문학의 고전인 E.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과 영화로도 잘 알려진 《꼬마 돼지 베이브》는 돼지를 식용 가축이라는 도구적 관점에서 벗어나, 고유한 인격과 감정을 지닌 생명체로 복원시킨다.

《샬롯의 거미줄》: 런트(runt, 낙오자)로 태어나 도축될 위기에 처한 아기 돼지 윌버는 거미 샬롯과의 우정을 통해 '특별한 존재'로 거듭난다. 거미줄에 새겨진 '대단한 돼지(Some Pig)'라는 문구는 인간의 시선이 규정한 돼지의 운명을 거부하는 강력한 언어적 저항이다. 이 작품은 돼지를 통해 생명의 경이로움과 우정의 가치를 역설하며, 독자들에게 식탁 위의 고기 이면에 존재하는 생명의 무게를 환기시킨다.

《꼬마 돼지 베이브》: 양치기 개가 되고 싶어 하는 돼지 베이브의 여정은 정해진 운명을 극복하는 주체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베이브의 정중함과 진심은 기존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며, 종을 초월한 공감을 끌어낸다. 이들 작품 속에서 돼지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약자들에 대한 연대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4. 민화와 팝아트 속의 돼지: 성스러움과 속됨의 경계

시각 예술의 영역에서 돼지는 민속적 기복(祈福)의 대상과 현대 사회의 물신주의를 비판하는 도구 사이를 오간다.

민화 속의 돼지: 동아시아의 전통 민화에서 돼지는 주로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암퇘지의 모습은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상징물이었다. 여기서 돼지의 비대함은 추함이 아니라 넉넉함과 여유의 미학으로 해석되었다.

팝아트와 현대 미술: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같은 팝아트 작가들에게 돼지는 대량 소비 사회의 키치(Kitsch)적 속성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소재였다. 현대 미술에서 돼지는 때로 금빛으로 도금되어 자본주의의 탐욕을 풍자하기도 하고, 혹은 박제된 모습으로 등장해 생명의 상품화를 고발하기도 한다. 성스러운 풍요의 상징이었던 돼지는 현대에 이르러 물질문명의 속물성을 폭로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장치로 재탄생한 것이다.

예술과 문학 속의 돼지들은 인간이 투영한 온갖 욕망과 가치관이 층층이 쌓인 상징의 박물관이다. 조지 오웰이 그린 돼지에게서 우리는 권력의 타락을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돼지에게서 낭만적인 고독을 느끼며, 윌버와 베이브를 통해 생명의 존엄을 배운다. 돼지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탐욕의 거울인 동시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순수함의 이면이기도 하다. 결국 상상력의 박물관에 박제된 돼지들은,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원한 문화적 화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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