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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돼지고기에 역사적 애정을 담고 있다


우리 민족은 돼지고기에 역사적 애정을 담고 있다


 

과거 역사 속에서 돼지고기의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돼지는 자급자족 형태로 기르면서 자가 도축이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중에서의 거래가 거의 없었고, 당시 한양의 양반계급 중심으로 역사, 문헌의 기록이 남기 때문에 기록에서 돼지고기의 이야기는 많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이 당시 민중(농민) 계급에서 돼지는 귀한 육식 공급원이었다. 17세기 말부터 상업이 발달하고 한양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돼지고기 거래가 활발해졌다. 아마도 이 시기부터 돼지고기의 소비량이 늘어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이 타 육류보다 월등하게 많은 것은 우리 민족이 돼지고기에 대한 깊은 역사적 애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형 고기 vs 농촌형 고기


산업혁명 이전 서양에서는 연하고 지방이 많은 고기는 부자층에서 스테이크로 구워먹고, 질기고 기름기 없는 고기는 가난한 농민층에서 스튜로 먹었다. 동시대의 같은 돼지 고기임에도 계층에 따라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주방의 화학자’, ‘요리의 과학자’로 불리는 해럴드 맥기는 그의 저서에서 ‘도시형 고기’와 ‘농촌형 고기’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도시형 고기’는 처음부터 먹기 위한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부드러운 고기이고, ‘농촌형 고기’는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가축으로 그 역할이 끝나 도축된 자원이었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돼지를 살펴보면 보다 흥미롭게 돼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제례와 빈례에 사용하기 위해서 관청에서 키웠던 돼지, 저육전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키웠던 돼지를 ‘도시형 고기’로 볼 수 있다. 반면 우리 역사 문헌에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농가에서 여인의 부업으로, 청소 동물과 채비 동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돼지는 ‘농촌형 고기’로 볼 수 있다. 지금은 농촌형 돼지가 오래전에 사라졌기 때문에 돼지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다. 도시형 돼지는 곡물도 먹이고 풀도 끓여서 먹이면서 어떻게든 살찌고 맛있는 고기를 생산하고자 노력했다. 사육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주장처럼 돼지는 인간과 먹이 경쟁을 했다. 그러나 경쟁상대라는 마빈 해리스의 주장은 ‘농촌형 고기’를 제공하는 돼지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달리 좁은 토지에서 효율적인 농업 생산 방식을 고민해야 했던 나라에서는 돼지가 농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퇴비를 생산하여 농업 효율을 높여 주니 돼지의 가치는 농가에게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마빈 해리스는 “돼지가 식물성 식품을 동물의 살로 전환하는 데 있어 포유류 중 가장 효율적인 동물”이라고 말했다. “돼지에게 밀이나 옥수수, 감자, 통, 기타 섬유소가 적은 다른 것들을 먹이면 실로 전환의 기적을 이룩할 것이다. 그러나 돼지에게 풀이나 그루터기나 나뭇잎처럼 섬유소가 많은 것을 먹이면 살이 빠져 버릴 것이다. 돼지는 잡식 동물로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돼지를 인간과 먹이 경쟁을 하는 가축으로 보았기 때문에 돼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고,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 역시 이 같은 요인으로 조선시대에 돼지를 많이 사육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제례와 빈례에 관한 조선실록 등의 문헌을 보면 별 근거가 없어 보인다. 


우리 민족은 돼지를 ‘농촌형 고기’로 키워왔다. 돼지를 대량 사육하기보다는 한두 마리 부업형으로 키워 마을 잔치의 추렴이나 집안의 관혼상제 시 자급자족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농촌지역에서 돼지의 거래는 다 큰 돼지 거래보다는 새끼 돼지 거래가 더 활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후에도 돼지를 한꺼번에 십 여 마리 키우는 전업 양돈은 주로 서울시내이거나 근교에서 이루어지고 농촌에서는 한 두 마리 채비와 청소 용으로 돼지를 키웠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새로운 공동체 의식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저서 '농민독본' 농민 편의 첫 구절이다. 인구의 90%가 농민이었던 나라였다. 소는 농업 생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가난한 농민이 보유하기 어려운 귀한 가축이었다. 가난한 농민은 지주나 부농 소유의 소를 빌려 써야했다. 평생 소고기 맛 한번 못 본 농민에게 돼지는 살아서는 값진 퇴비를 만들어 주고 관혼상제에 고기 국에 고기 한점 먹어 볼 수 있는 고마운 가축이었다.


대한민국은 농민의 아들딸들이 노동자가 되어 압축 성장의 기적을 만든 나라다. 쌀밥에 고기를 배불리 먹고 싶었던 가난한 나라는 이제 없다. 급격한 산업화로 이농이 단기간 급속히 진행되면서 공동체 사회(게마인샤프트)가 급격히 붕괴되었다. 산업화로 이익 사회(게젤샤프트)가 되면서 우리가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의 일부라도 지켜올 수 있었던 건 매일 밤 불 판 위에 삼겹살(돼지고기)을 구우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쌓았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삼겹살은 오롯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상징하고 함축하는 소울 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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