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이전의 우리 민족과 돼지
돼지와 인연이 깊은 부여
서기 1세기 중국 후한(後漢)의 사상가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에는 부여의 건국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옛날 북방에 탁리국(槖離国)에서 왕의 시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왕이 아이를 죽이려고 돼지우리에 버렸으나, 돼지가 입김으로 아이의 몸을 녹여주어 죽지 않았다.” 여기서 탁리국의 돼지가 살려준 아이가 곧 부여(夫余)를 건국한 동명(東明)이다. 부여의 건국신화와 유사한 고구려의 건국신화에도 돼지가 등장한다.
부여는 돼지와 인연이 깊은 나라이다. 부여는 말, 소, 개, 돼지 등의 이름을 따서 마가(馬加), 우가(牛加), 구가(狗加), 저가(豬加)의 관명(官名)을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돼지 이름을 딴 이름이 저가(豬加)이다. 우가(牛加), 마가(馬加)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国有君王, 皆以六畜名官, 有馬加·牛加·猪加·狗加·大使·大使者·使者(나라에 군왕이 있고, 모두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을 명하니,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가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가(加)는 다른 부여 계열의 직제에도 나타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대인을 지칭하는 것이니 원래는 씨족장, 부족장을 뜻하는 말이었다. 즉 가(加)는 처음 족장의 명칭에서 시작해서 대관, 장관의 직명으로 변했다. 이와 같은 가(加)에 대하여 馬, 牛, 猪加(마, 우, 저가) 등의 가축의 이름이 사용된 것은 역시 고유색을 띤 것으로 목축경영 시대의 축군자본별(축산별)에 의한 족장의 칭호가 그대로 계급에 이용된 것이다. 지금으로 말해 장관직과 같이 높은 관직명으로 사용됐다는 것은 그만큼 가축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여는 소, 개, 말과 함께 돼지를 키웠는데, 가축을 잘 기르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여 관련 기록에 돼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부여 지역이 돼지를 키우기에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돼지는 본래 숲 지대나 그늘진 강둑에 사는 동물이다. 나무 열매 또는 과일, 식물 뿌리 등을 먹으며 산다. 부여가 위치했던 만주 지역은 지금도 중국에서 가장 많은 목재를 생산한다.
644년에 진나라(晉- 265~419) 역사를 기록한 [진서(晉書)]의 <숙신씨(粛慎氏)> 기록에는, “이 나라에는 소와 양은 없고 돼지를 많이 길러서, 그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며 털은 짜서 포(布)를 만든다.”라고 했다. 이 기록은 [구당서(旧唐書)] <말갈(靺鞨)> 기록, “그 나라에는 가축으로 돼지가 많아 부유한 집은 수백 마리가 되며, 그 고기는 먹고 가죽으로는 옷을 지어 입는다.”라는 내용과 거의 같다.
정착하고 농경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대자연에 대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혼(霊魂)의 존재를 인식하고 여러 제사 의식을 거행했다. 그 시대는 권력자가 천하를 잡으면 자기 자신을 하늘의 아들이라고 하며 제사를 올렸으며, 이때 반드시 올리는 희생물로서 동물 (소, 돼지, 양, 개 등)을 사용했고, 제사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희생물의 피와 고기를 나누어 먹고 서로 간의 융합 일치를 다짐했다. 또한 부여의 제천행사로 영고가 있었다. 제사에 필요한 희생용으로 가축을 키웠으며 제사가 끝난 뒤에 식용으로 이용했다.
사실 제사의 목적은 신령의 보호를 구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왕련샹). ‘시경(詩経)’의 ‘소아(小雅), 초자(楚茨)’에 “신이 음식을 즐기니, 너에게 백복(百福)을 줄 것이고, 신이 음식을 좋아하니 군자를 오래 살게 한다.”는 시가 있다. 여기서 “귀족이 제사를 지낼 때 지녔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 만약 신령이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신령에게 올린다면, 신령은 당신에게 만복과 장수를 줄 것이다(왕련샹).”
궈바오쥔(郭宝鈞, 1893-1971)은 ‘중국청동시대’에서 “제사는 본래 인간이 신령에게 뇌물을 주는 일종의 수단이다.”라고 했다. “신령에게 바치는 모든 제물은 희생물이기도 하지만, 결국 신령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예외도 없이 사람들이 신령을 대신해서 그 희생물을 처리하는 노고를 겪어야 한다. 즉 사람들은 이들 제물을 먹어 치우고서 도리어 이것을 신령이 내린 복이라고 한다”(왕련샹).
희생과는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가축을 대가로 지불하는 가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여자를 친정에서 데려가려면 소나 말을 주어야 내주게 마련이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동생이 아내로 삼는데, 이 풍속은 흉노의 것과 같다. 이 나라에서는 제사용 소를 잘 기르고, 이름난 말(그리고 붉은 옥, 아름다운 구슬도)이 난다(女家欲得. 輸牛馬乃与之. 兄死妻嫂. 与<匈奴>同俗. 其国善養牲. 出名馬(.....))”라고 나온다.
고대국가 읍루와 돼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숙신씨라고 했던 읍루에 “돼지를 많이 길러서 고기는 먹고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어 입고, 그 기름은 몸에 발라 방한에 이용했다.”(其俗好養豬, 食其肉, 衣其皮. 冬以豬膏塗身, 厚数分, 以禦風寒)는 기록으로 보아 돼지를 식용으로만이 아니라, 방한(防寒) 목적으로 돼지기름을 이용했을 것이다.
겨울철에 돼지기름을 몸에 바른다는 뜻은 무엇일까? 우선 겨울에 많이 잡아먹었다는 말이다. 열량이 많은 돼지고기로 추위를 이기고자 했을 것이다. 최근까지 여름 돼지고기는 그리 환대받지 못하고 있다. 겨울 피부는 거칠고 트게 마련이므로 피부 보호용으로 기름을 발랐을 테고, 이는 추위를 막아주는 방한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또 죽은 사람은 관에 넣고 돼지를 잡아서 그 위에 쌓아 죽은 사람의 양식이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읍루에는 돼지를 길러서 털을 짜서 천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돼지 털을 이용해서 옷감을 만든 것은 문화가 더 진전했다는 의미이다. 희생물 돼지와 함께 제사용 돼지 그리고 사망자의 양식이 되는 돼지는, 사람이 살아서 먹던, 그 좋은 음식인 돼지고기는 죽어서도 좋은 음식이 된다는 것으로, 돼지가 제사용으로 얼마나 대접을 받았는지 잘 보여준다.
오늘날도 가정 내 제사, 마을 제사, 기우제 그리고 무당굿에도 반드시 돼지머리를 올린다. 돼지머리가 돼지 한 마리를 의미한다고 보면, 돼지가 제사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희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이나 죽은 자에게 돼지가 제물이고 양식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역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