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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똘 Sep 03. 2020

알바 면접 말아먹은 취준생의 의식의 흐름

지금보다 더 앞이 안보였던 1년 전의 나


미드의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에는 'Role taking'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Role taking'이란, 상호작용 속에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취해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을 이중적으로 보게 된다.

타인의 입장에서 보는 나, 스스로 인식하는 나.


그러니까, 오늘 내가 알바 면접을 보면서 사장의 눈에 비칠 나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Role taking 능력을 잘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에 비친 나는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누가 봐도 일을 잘 못할 것 같은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평소 내 인상이 일못(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원래 같으면 서글서글한 말투와 호의적인 표정을 동원해 나를 어필했겠건만, 책임을 강조하며 이런저런 말을 이어가는 그 앞에서, '뭘 당연한 소리를...'이라는 생각과 '좀 귀찮겠네...'라는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내는 내 모습이 보였다.


써 놓고 보니 약간 모순 같기도 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귀찮겠다고 생각할 수가 있나? 가능하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도보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이런저런 필요한 것들 고려사항들을 체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귀찮은 과정이란 것도 떠오를 수 있다.


생각해보니 과정에 대해 잘 알 수록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귀찮다고 생각할 확률이 크겠구나 싶다.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이전과 달리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직접 겪고 단계를 알아갈수록, 과정에 필요한 당연하고도 귀찮은 요소들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취를 시작하면서도 그랬다. 나를 돌보는 일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게 되는 동시에 그게 얼마나 귀찮고 수고로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은 또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부터가 수고로운 일이었다. 그런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간단히 끼니를 챙길 수 있는 시리얼이나 빵을 사다 놓는 다른 수고의 과정이 있어야 아침에 눈을 떠 뭘 먹을까 고민하는 수고를 덜어내 줄 수 있었다. 정직한 인풋과 아웃풋.


이런 인풋의 과정에 무지할수록, 단계에 대해 모를수록 귀찮다거나 불안하다고 느낄 확률은 더 줄어들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이런 뜻에서 나온 거겠지.


그러니까 내가 사장의 이런저런 체크사항을 들으며 돈 받고 일하는데 당연하지...라고 느끼는 동시에 그 책임질 것들이 얼마나 귀찮고 신경 쓰이는 일인지 느끼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일을 해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졸업 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애초에 방향이라는 걸 스스로 설정해본 적이 없었다. 가야 하는 길은 늘 정해져 있었다. 공부해야 하니 공부했고, 대학에 가야 하니 대학에 갔다. 언제나 정해진 길 위에서 할 만한 정도만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니 지금 나는 사실 길을 잃을 수준도 안 된다. 내 길을 나선 적이 없으니 길을 잃을 수도 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저 내가 길을 정해 한 발짝 떼는 일이 두려운 것 같다. 오늘 그 짧은 면접 시간 동안 두려움에 위축된 모습이 여과 없이 타인의 눈에 비치어졌다. 그리고 나의 눈에도 되돌아왔다.


발을 떼기 위해 준비하는 나에 비해 누군가는 미리 지도를 준비하고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함께 길을 떠날 파트너를 찾기도 했겠지 생각하면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이렇게 한 자 한 자 적어가며 나를 남겨보는 것이 허허벌판에 그나마 벽돌 하나 쌓는 일이다. 적어도 벽돌 하나는 쌓았으니, 오늘의 나를 이만 놔주어야지. 내일 쌓을 벽돌은 내일 생각하자.


_190817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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