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분명 노래에서는 새들의 고향이 독도라고 했는데, 영락이가 원하던 정답은 아니었나 보다.
영락: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한국 말고 페루에서 새들의 섬이 어디인가 말이야.'
상진: '페루, 새들의 섬?'
보통 페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추픽추와 이카사막의 와카치나를 떠올리기 때문에 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안 했었다. 그러니 섬에 대한 질문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상진: '페루에도 섬이 있었나?'
영락: '있어. 페루에도 섬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들이 바예스타와 우로스 섬이야. 그리고 새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바예스타가 우리가 오늘 여행할 곳이지.'
남미의 다양한 지역 중에서도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는 갈라파고스는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갈라파고스를 관광하려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작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페루의 바예스타 섬을 찾는다. 바예스타 섬은 바닷새의 배설 퇴적물인 '구아노'의 산지로 유명한데, 그만큼 바닷새들이 섬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가마우지, 물떼새, 펠리컨, 갈매기 등 무려 100만 마리 이상이 서식하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새들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우리도 작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바예스타로 출발했다. 출발 전 미리 섬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해서 뱃시간에 맞춰 이동을 했다. 바예스타 섬은 투어를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둘러볼 수 있고, 비용도 약 50솔 정도밖에 안돼서 배낭여행자들도 부담 없이 편히 즐길 수 있다.
바예스타로 가는 길은 참 편안했다. 그동안 성스러운 계곡이나 마추픽추 등을 이동하면서 대부분 오프로드 길을 달려왔다. 길은 굽이지고 험해서 차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없던 멀미마저 생길 지경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한적하고 잘 정리된 아스팔트의 도로는 문명의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다.
30분여를 달려 보트가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동안 다녔던 사막과 계곡, 그리고 고산의 분위기와는 상반되면서도 색다른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마침 날이 너무 좋아 햇살이 가득했고, 햇살을 듬뿍 받은 물결은 황금빛을 내며 일렁거리고 있다. 선착장의 지주대에는 바닷새들이 사뿐히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귀엽고 예뻐 보였다.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나라, 페루는 확실히 이색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이미 선착장에는 바예스타섬에 가려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도 탑승까지 여유 있게 바다를 둘러보며 기다렸다. 참 좋다. 여행자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남미 사람들의 일상과 시간은 아주 느긋하고 여유롭게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듯 느껴진다. 분명 문명의 발달과 삶의 질과 수준은 한국이 페루보다는 훨씬 선진국임에는 분명하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삶과 일상을 대하는 자세는 페루인들에게 배워야 할 것 같다.
서성이는 사람들 사이로 아저씨 두 명이 걸어오더니 이내 탑승을 시작한다고 외치자, 사람들은 줄을 서서 보트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우리도 앞 쪽에 자리에 앉았고 보트는 어느새 30명 정도 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들의 자리를 정리하며 안내사항을 전하고 승객들은 전원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주의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선체 밖으로 몸을 내밀지 말 것.'
'구명조끼를 항상 착용하고 있을 것'
간단하면서도 안전에 꼭 필요한 주의사항이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랜만에 입어보는 구명조끼는 몸에 딱 맞춰 줄을 조여주었고 곧 보트는 시동과 함께 '부르릉' 몸을 떨며 힘차게 바다를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힘차게 달리는 동안 날은 조금 흐렸고 저 멀리 바다 안개가 깔려있는 게 보였다. 속도를 더 올리니 바람과 함께 물방울들이 피부로 튀며 건조함과 무더위를 시원히 날려준다. 그때가 페루에서 가장 상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보트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바다를 달리면서 왼쪽으로 돌아보니 토산 하나가 보이는데 토산에는 나스카라인과 비슷한 문자인지 문양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페루를 다니며 몇 개의 산에서 비슷한 문양들을 본 게 기억이 났다. 참 미스터리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대체 그 문양은 어떤 의미인 걸까'
문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저 멀리 바예스타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코끼리가 서있는 모습과 흡사하게 생겼는데 그때 코끼리 위의 까만 점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어? 저게 뭐지..'
조금 뒤, 까만 점들이 훌쩍 뛰어오르더니 우르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까만 점들로만 보였던 것들은 바로 새떼였다. 수천인지 수만인지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서 이동을 한다.
보트가 섬에 가까워질수록 새들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기암절벽과 바위로 이루어진 섬에 수만의 새떼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장관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런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보트는 섬에 정박하지 않았다. 바예스타 섬은 페루에서 지정한 국립공원으로 엄격히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보트로 섬의 주변을 돌며 그 모습을 보여주기만 한다. 섬에 가까이 가자 까만 점들의 정체는 아주 선명하고 놀라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바닷새들이 그 생김새를 뽐내고 있다. 평소 볼 수 없던 모습의 새들이라 그 생김새가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나 보이기도 하지만 한 두 마리야 귀여울지는 몰라도 그런 새들이 수만 마리가 있으니 왠지 모를 오싹함이 들기도 했다.
섬의 등선으로 가득한 새들을 돌아보고 보트는 기암절벽 및 의 해안가로 이동을 했다. 해안가에는 까맣고 동글동글한 것들이 무더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저 해안가에 있는 바위인 줄 알았는데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고는 경악을 했다. '바다사자' 무리였다. 대단히 놀라운 것은 바다사자가 해안선 시작부터 끝선까지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았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바다사자'를 본 것도 처음이다. 서울에서야 아쿠아리움에나 가야 한 두 마리를 보는 게 전부인데 수백 마리의 바다사자는 그야말로 천혜의 아쿠아리움인 이 곳 바예스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바다사자 무리를 보느라 잠시 멈춰있던 보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암으로 된 아치를 지나 섬의 다른 쪽으로 가니 바다사자와 새들이 어울려 쉬고 있는 게 보였다. 바다사자는 바위 위에 그대로 누워 쿨쿨 자다가 한 번씩 깨어 하품을 하고, 바닷새는 그 옆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마치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애니메이션처럼 그려졌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보트는 다시 섬을 두 바퀴 정도 돌고는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간다.
처음 바예스타 섬 투어를 신청할 때는 솔직히 큰 기대감이 없었다. 페루에서 계속해서 사막과 계곡들을 지나왔으니 바다 역시 보고 오자 라는 마음으로 신청했던 것인데 생각과는 달리 아름답고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만날 수 있어서, 또 새들의 이동과 바다사자의 서식지를 직접 볼 수 있어서 큰 감명을 받았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바예스타 섬에서의 그 놀랍고 신기한 자연의 경관들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과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