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운'과 '타이밍'이다. 살면서 평생 한 번을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여행지라면 특히나 더 '운과 타이밍'이 절실히 필요하다. 가령 독도에 가려고 했을 때,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배를 섬에 정박하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할 수도 있고, 파도가 거칠면 배조차 띄울 수 없을 때도 있다.
더욱이 가야 할 곳이 비행기와 기차, 버스를 갈아타며 50시간 이상을 달려와야지만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 '운과 타이밍' 즉,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마추픽추가 그렇다. 어렵사리 마추픽추에 올라도 날씨가 좋지 않아 안개가 자욱이 낀다면 그 아름다운 전경은 보지도 못하고, 그곳에 도착했다는 위안 감만을 가지고 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부디 나는 마추픽추의 장엄한 경관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아침 일찍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와 물, 음료 등을 샀다. 마추픽추에 오르면 식사를 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기 때문에 미리 먹거리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전날 확인을 해 두었던 매표소로 와서 예매해 두었던 티켓을 받았다. 일찍부터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고 우리는 그 뒤로 섰다.
표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서 있는 동안 마추픽추를 이제 곧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진: '후.. 드디어 마추픽추까지 왔구나.'
영락: '그러게. 곧 마추픽추에 오를 거라 생각하니까 왠지 떨려'
영호: '맞아. 나도 그런 걸.'
영호, 영락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녹색으로 도색된 초록버스는 마치 우리나라의 시내버스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버스는 길이 굽이진 산길을 타고 마추픽추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흔들흔들.. 페루 여행 중 힘들다고 여겼던 것 중 하나가 '고산증'과 더불어 '산길'이다. 특히 이런 산간마을에는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흔들림도 심하고 산길을 따라 굽이진 곳이 많다 보니 멀미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대 자연의 경관 덕분에 잠시 멀미를 잊을 수가 있었다.
끼익.. 30여분을 달리고 나니 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추픽추의 입구를 바라본다. 그런데 생각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유적의 흔적만 남아있는 좀 더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마추픽추의 입구에는 2층으로 된 테라스 카페들이 있었고 그 밑으로는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 앞으로는 사람들이 티켓을 끊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버스는 우리가 타고 온 것 만이 아니라 이미 도착한 버스들과 여행사에서 렌트된 버스들이 입구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것이다.
우리는 미리 티켓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매표소 앞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입구 왼편에 있는 마추픽추 간판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 나오니 산 위에 세워진 잉카제국의 공중도시 마추픽추가 눈앞으로 펼쳐진다.
마추픽추의 전경
태양의 도시, 공중 도시, 그리고 잃어버린 도시라 불리는 마추픽추. 해발 2,400미터 바위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공중에서만 볼 수 있었기에 수풀에 가려진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다. 그렇게 1911년 하이럼 빙엄이라는 미국인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오랜 세월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 숨겨져 왔던 비밀의 도시이다. 잉카문명의 고도로 스페인 침공 때 제국의 마지막 성전이 벌어졌고 그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을 함께 한 곳으로 '잉카 최후의 요새'로 불리고 있다.
잉카인들은 돌을 다루는 솜씨가 신기에 가까웠다. 바위산에서 수십 톤이나 되는 돌을 떼내어 가공을 하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옮겨 돌을 쌓고 집을 지었는데, 돌을 가공하는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작은 틈조차 없을 정도로 원하는 곳에 원하는 크기로 딱 맞게 만들었다. 그런 잉카문명의 기술들은 지금까지도 그 방법이 풀리지 않기에 미스터리로 남아있다.안데스 산맥의 험하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계곡들 사이로 세워진 잉카문명의 공중도시. 이 꿈같은 도시를 만나기 위해 나는 페루에 온 것이다.
쌓인 돌담들 사이로 천천히 걷다 보면 금세 망지기의 집을 만날 수 있다. 마추픽추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하는데, 실제로 잉카제국 시절에도 망을 보던 곳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에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마추픽추를 즐기고 있다. 나도 망지기의 집 옆, 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여행하며 틈틈이 스케치들을 하고 있었기에 지금 내가 느끼는 마추픽추의 장엄함을 스케치로 남기고 싶었다. 스케치북 위에 선들을 하나둘씩 그어가면서 어느 정도 형태가 만들어지자 근처를 지나가는 여행객들은 그 모습이 신기한지 가까이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인사말을 건네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여행자들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도하고 스케치를 하는 내 모습을 찍더니 마치 마추픽추의 코스인 양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연신 나를 찍어댔다.
스케치가 마무리될 즈음 한 동양인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마추픽추 망지기의 집
청년: '저어.. 혹시 한국분이세요?'
상진: '네. 한국사람 맞아요.'
청년: '아, 저도 한국사람인데 같은 한국분이 이런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신기해서요.'
나를 신기하다며 말을 건넨 사람은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지금 배낭여행 중이라고 했다.
'지구 반대편의 마추픽추 같은 곳에서 같은 한국인이 멋지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제게는 감동이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그림들 많이 그리시길 바래요.'
그와 긴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에서 호기심과 진심이 전해졌다. 내가 느끼고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있었을 뿐인데 청년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되니 그 마음이 무척 고맙고 감동스러웠다. 더불어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지는 기분도 함께 들었다.
스케치를 마무리하고 한 껏 좋아진 기분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망지기의 집을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태양의 문'이라 불리는 썬 게이트가 나온다. 썬 게이트는 잉카 브릿지나 와이나픽추와 달리 고생을 하며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되어서 누구나 쉽게 산책하듯 돌아볼 수가 있다. 썬 게이트 돌담 사이에 서서 아래로 넓게 펼쳐진 마추픽추의 모습을 바라봤다.
놀라운 기술력으로 돌들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집과 창고들, 그리고 정돈된 도로 위에서 잉카인들은 활기를 띄며 생활을 한다. 어떤 이들은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농사를 짓고, 어떤 이들은 수레를 끌고, 또 어떤 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사람들과 어울리고는 한다. 험한 안데스 산맥의 삶과 척박한 환경은 그들의 삶을 고되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항상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과 감사함에 기도를 올리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논밭을 경작하고 그리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삶을 상상하니 눈앞의 빈 터는 잉카인들로 가득 채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에네스토 게바라와 알바르토라는 두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하며 경험하는 여정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에네스토 게바라가 썬 게이트에 서서 붉은 석양빛에 물든 마추픽추와 잉카문명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모습은 지금 나의 모습과 꼭 같았다.
썬 게이트에서 방향을 바꿔 더 가다 보면 '잉카 브리지'로 들어서게 된다. 잉카 브릿지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나무로 지어진 안내소에서는 방명록에 이름을 기록하게 한다. 아마도 출입한 사람들의 명부를 만들어 혹시라도 있을 지모를 사고나 조난을 대비해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기록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방명록에 이름을 기록하는 곳은 이외에도 몇 곳이 더 있다.
잉카 브릿지는 절벽 옆으로 좁은 길을 만들어 오고 가고 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 길 옆으로는 천 길 낭떠러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이다. 한번 휘이 보기만 해도 아찔한 그곳은 스페인 침략 시절 최후까지 항전하던 곳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멀찍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잉카 브릿지에서 나와 다시 돌담들 사이로난 흙길을 따라 마추픽추의 곳곳을 돌다 보면 잉카인들의 석조 기술 외에 또 하나의 놀라운 기술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관개수로이다. 계단식으로 지어진 논밭으로 물이 충분히 공급되기 위해서는 '수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원과 연결된 관개수로('잉카 수로'라고 불린다)는 자동으로 물을 댈 수 있게 끔 만들어졌고, 자연경관을 해 치치 않고 산을 에둘러 만들면서 수원을 여러 곳으로 만들어 한쪽 수원의 공급이 끊어져도 물길은 다른 곳으로 이어져 나온다. 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넓은 저장소가 있어서 우기 때 모아두었다가 가뭄이 들거나 물이 부족할 때 방출하기도 한다.
뛰어난 석조기술로 정교히 만들어진 수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그런 수로가 무려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렇기에 잉카문명의 기술들은 지금까지 외계인이 설파했다는 둥, 미스터리 한 이야기들로 남겨졌나 보다.
수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돌벽 밑으로 라마들이 풀을 뜯고 모습이 보인다. 유적지와 어우러져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라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연인이라는 기분이 이런 걸까.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마추픽추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봉우리 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마추픽추보다도 한참 높아 보이는 이 봉우리의 이름은 '와이나 픽추'이다.
마추픽추가 '늙은 봉우리'라면 와이나 픽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대제사장과 동정녀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와이나 픽추에서 바라보는 마추픽추의 풍경은 환상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추픽추의 환상적인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 높다. 저기까지 언제 올라가지?'
장엄한 와이나 픽추의 모습에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그렇다고 평생 한 번뿐인 경험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오른 열감을 식히려고 머리에 물을 붓고 신발끈을 다시 고쳐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