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01.

by Jude

밤새 잠을 거의 못 잤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잠 반 화장실 반인 시간이었다. 그렇다. 종합건강검진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위장 수면 내시경이 포함되어 있어서 위장을 깨끗하게 비워야 하는 터였다. 겨우 긴 긴 대장 청소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여섯 시. 바로 준비하고 나가야 일곱 시 근처에 도착할 듯했다. 서둘러 택시를 불러 여섯 시 반에 출발. 몇 년 만에 만나는 이른 아침의 서울 풍경은 한 없이 낯설고 신기했다. 마치 시골쥐 서울쥐처럼 난 새로 바뀐 동네의 모습에 가는 내내 감탄했다. 그 감탄 덕분인지 우려했던 곤란한 용변으로 인한 비상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검진센터에 도착하니 7시 10분 정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기서 또 한 번 놀랐다. 다들 왜 이리 일찍 출근하는 걸까. 저들의 출근과 도착할 사무실에서 또 어떤 사정과 사연들이 펼쳐질까. 궁금하기도 잠시. 난 입이 떡 벌어졌다. 마스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었음 내 표정은 고스란히 나의 감정을 드러내버렸을 것이다. 보통 이런 검진센터가 도떼기시장 같다고 들었었고 전에도 종합검진을 병원에서 받아보긴 했지만 이 검진센터에는 이미 도착한 많은 사람들의 초조한 기다림으로 꽉 차 있었다.


전쟁터에 갑자기 던져진 초짜 군인처럼 마구 던져지는 질문에 어버버 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니 이름은?! 생년월일은?! 다그치듯 묻는 질문들을 해결하고 나는 어느새 깨끗하지만 낡은 가운으로 갈아입은 채 해당 번호가 적힌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검사들.

계속 혼나고 있는 이상한 기분이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낙오자 같다고 할까. 난 잘하려고 하는데 자꾸 혼이 난다. 움직이지 마세요. 다리 접으세요. 손 앞으로 나란히 하세요. 하세요. 마세요. 모든 게 명령이고 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을이다. 그들의 명령은 빠르며 명료하고 난 느리고 엉거주춤하다.


그들에 의해 치워 지고 다음 검사로 다음 검사로 넘어간다. 바지에 구멍이 나 있는데 앉아 있는 게 영 불편하고 아프다. 왜 이렇게 만든 거지. 앉아 있을 수가 없잖아. 그런데 이런 불편함은 나만의 고통만은 아닌가 보다. 장내시경을 하는 사람은 연두색의 긴 가운을 입고 있는데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의 엉덩이가 다들 들썩들썩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슬며시 나온다. 나만 불편한 건 아니었구나. 이 불편이 나만의 것이 아닌 공동의 불편임을 알게 되자 이 안도감은 무엇인가. 불쾌감이 공유의 감정이 되자 괜히 고개를 슬며시 드는 반가움까지.


폐 ct를 찍으러 도착하자 그곳의 대기공간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날 가장 불안하게 만든 건 대기실의 안마의자 네 개와 빼곡한 사람들. 아 이거 오래 기다리겠구나. 빈자리가 텔레비전 바로 아래 자리밖에 없어서 그곳에 자릴 잡았다.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선택권이 없으니까. 안마의자의 소음이 날 괴롭혔다. 슬슬 시장함이 몰려온다. 위장이 비었으니 당연한 거겠지. 주식 알림이 뜨길래 오늘은 올랐을까 떨어졌을까 나의 몇 안 되는 소소한 주식들을 살피러 앱을 켰다. 응? 왜 검은색이지? 아 시간을 보니 9시가 안 되었다. 온 지 세 시간은 넘은 것 같은데 아직 9시가 안 되었다니. 오늘 하루가 매우 길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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