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유목민 .01

전 프로 환자입니다.

by Jude

이번에 정신과를 또 바꾸게 되었다. 수원에서 온 뒤로 수원에서 다니던 s정신과가 일산에 체인점이 있길래 그쪽으로 쭉 다니던 터였다. 인천에서 가기엔 거리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다녔던 데이터를 넘겨주고 그렇게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어찌하다 보니 의사 선생님의 하소연도 들어주게 되고 나보다 어린 그의 고충을 듣다 보면 사람 사는 게 다들 녹록지 않구나 싶기도 했다. 어느 날은 나보다 의사 선생님의 넋두리가 더 길어 “정말 힘드시겠어요.”라고 맞장구를 한참이나 쳐 주다가 진료실을 나오기도 했다.


월급쟁이 의사. 소위 말하는 직장인과 똑같은 개념. 원장에게 어지간히 쪼이는 듯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환자를 소화해야 하고 사실상 원장=오너 지 않은가. 직원을 부려 최대한의 이윤을 내게 해야 하는 것이 오너의 가장 큰 목표니 병원이라고 다를 리 없다. 깨끗하고 정갈한 대기실과는 달리 진료실은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다. 상기된 얼굴, 부스스한 머리, 빠른 말투, 끊임없이 키보드 위에서 바쁜 타이핑 중인 손가락. 게임이었다면 의사 선생님 머리 위로 짜랑짜랑 소리와 함께 동전이 끊임없이 카운트될 것이다.


그날은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유난히 다른 날보다도 얼굴이 상기되어 있던 의사 선생님은 내가 자리에 앉자 “그동안 멀리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입을 떼셨다. 난 직감적으로 “그만두시나요?”라고 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네, 잘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난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여차저차 많은 정신과의사를 만나봤지만 짤렸다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왜요? 왜 잘리셨어요? “라는 나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월급 받는 의사는 계약기간이 1년인데 이번엔 원장이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유에 대해 쭉 적은 걸 엄청 빠른 속도로 읊어줬는데 정말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늘 평가당하고 점수가 매겨지는 게 직장생활이라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이 슬프면서 분노가 일어났다.


그 정신과는 늘 잔잔한 찬양 연주 소리가 흐르고 매 번 생화를 정성스레 꽂아놔서 참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생각하곤 했는데 그 모든 게 가식덩어리로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병원의 처지겠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의사들을 푸시한다니. 한 시간에 최소 몇 명을 봐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다고 하니 생각할수록 예전 회사 사장은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실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으면 다급하게 가운을 펄럭이며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에 다녀오곤 했던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더라니… 하긴 나도 예전 회사에서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방광염을 달고 살았었지. 우리의 소변권은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각설하고. 안 그래도 멀어서 병원을 옮기려고 고민하던 차였는데 그럼 필요서류를 챙겨달라고 하고 서로의 안녕을 빌며 진료실을 나왔다.


늘 내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꼭 잘 되셨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던 선생님이었는데. 마지막 시간에도 결국 선생님의 거취문제나 병원의 불합리한 노동자에 대한 처우로 둘이 분노로 대화를 채우긴 했지만. 나보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던 상담선생님도 그립고. 내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던 사람들은 다들 어딜 가는 걸까. 힘들게 의사가 되었을 텐데 1년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자랄 수가 있을까. 병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저렇게 단칼에 짤리고 마는 것을. 계약직, 수습, 인턴… 이런 말들이 싫다. 나도 내 가게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난 사람을 도구로 볼 수 있는 이성적인 운영능력이 안 되나 보다.

암튼 동네에서 가깝게 다닐 수 있는 병원을 다시 알아봐야 했다. 다시 또 설문지니 뭐니 증상을 말할 생각을 하니 지겨움이 확 몰려왔지만 난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난 프로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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