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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Jan 29. 2022

나의 이혼이야기.01

01.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딸입니다."

 미칠 것 같은 슬픔과 절망이 올라왔다. 다섯째 딸이었다. 그렇게 바랬는데, 그렇게 원했는데.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불안하고 불안해 그렇게 기도해왔는데. 아픔과 허망함보다 더 뜨거운 무엇이 눈에서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남편의 역정 난 표정이 생각나고 우리 딸아이들의 미래와 나의 앞으로가 막막해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 남편은 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의사에게 달려가다시피 해서 '우리 집은 가난하고 딸도 이미 넷이나 되니 저 아이는 다른 데로 입양 보내고 싶소. 도저히 데려가기가 힘들다.'라고 했고 의사 선생님은 바로 아이를 낳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역정을 내고 남편을 내보냈다. 그렇게 그 막내딸 아이는 집에 오게 되었다.






 이게 내가 들은 나의 탄생사이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가장 슬픈 말은 날 낳자마자 딸이라는 의사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슬프면서도 그녀의 아픔과 고통이 전해지는 듯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실제 난 나의 진짜 생일과 호적상 생일이 6개월 정도 차이가 난다. 실제 태어난 건 6월 생일이지만 계속 다른 집에 보내려고 알아보다 보니 1월이 되었고 뒤늦게 그래도 아이 나이는 지나면 안 되겠다 싶어서였는지 다음 해 빠른 1월생이 되었다. 사람들이 내 생일과 호적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냐고 궁금해해서 난 아무렇지 않게 이렇고 이래서 이렇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니 다들 난감한 표정으로 "왜 그렇게 슬픈 이야길 아무렇지 않게 해"라고 해서 그때서야 아, 이게 슬픈 일인 거구나 생각했다. 내 생일이 진짜 생일과 가짜 생일 두 개란 사실이. 아들을 그렇게도 원했지만 결국 딸 다섯 집 막내. 실패작. 그게 내 근본적인 자아였다.






 고3. 넉넉하지 않은 집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나한테 희망을 거셨는지 '과외'라는 큰 승부수를 두셨다. 그리고 그 시절 한창 유행하던 채팅 사이트 유니텔에서 언니의 채팅 친구가 마침 과외를 구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과외 선생님으로 소개를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 사실 그의 외모는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사실 못 생겼다는 평가가 많았다- S대 학생이라는 후광이 충분히 나를 매료시켰다. 또한 과외 선생님으로서 지적인 우월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그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타닥 타닥 타닥. 우리 집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가벼운 뜀박질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그리고 보이던 기다리던 얼굴. 우리 집은 4층에 옥탑방이 있었는데 아버지 몰래 과외를 하느라 옥탑방에서 비밀과외?를 받았다. 혼자 공부해서 경찰의 꽤 높은 간부급까지 올라간 아버지에게 과외나 학원 따위는 자기 노력이 부족한 자들의 핑계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 중에 과외나 학원을 다닌 유일한 존재인 나는 언니들의 미움을 받곤 했다.) 그는 항상 과외 시간에 늦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매일 당구를 치다가 늦거나 지난밤 밤새 당구를 쳐서 늦잠을 자서였다. 그는 5월 31일 날 영장을 받아 놓은 휴학생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과외를 시작한 2월이 지나 점점 봄이 오는 따스한 공기가 세상에 차기 시작한 계절. 옥상에서 그가 가는 길에 인사를 하며 그 뒷모습이 없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흔들면서 난 깨달았다. 나 저 사람 많이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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