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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Feb 02. 2022

나의 이혼이야기.02

02.명절을 지나며

 명절이 지났다. 

 이혼 전에는 명절이 그렇게도 싫었다. 소위 말하는 명절 증후군. 명절 한 달 전부터 짜증과 두통을 달고 사는. 시댁에서 난 맏며느리였다. 시댁의 사적인 사정으로 시어머님은 나가서 사시고 시댁에는 시할머님, 시아버님, 결혼 한 나보다 한 살 어린 시여동생- 이렇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의 역할을 내가 다 해야 했다. 일단 나에게 주어진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명절날 아침을 차리는 것이었다. 요리라면 어떤 맛있는 재료도 못 먹는 음식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나에게 그것은 상당히-사실 엄청난- 부담이 되는 미션이었다.

 

 그래도 결혼하고 첫 명절인데. 난 참한 새댁의 모습을 시댁에 보여드리겠다는 투지와 어떻게든 이 고비를 잘 넘겨 시댁에 잘 보이고 말겠다는 의무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엔 만두를 넣고 떡국을 해야지!’ 내가 선택한 요리는 떡만둣국이었다. 가장 실패할 확률이 낮고 빠른 시간 조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절 전전날 미리 장도 보고 재료들도 크지 않은 냉장고에 겨우겨우 집어넣어 놓았다. 준비 완료. 






 당시 우리 친정은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음식을 해야 했는데 언니들이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다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음식 할 사람이 어머니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명절 전 날 친정에 가서 음식을 해야 했다. 오전부터의 길고 긴 전들과의 전쟁을 끝내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친정을 나왔다. 지끈지끈한 허리를 잡고 집에 가려고 차를 탔는데 갑자기 남편이 누나의 전화를 받고는 내게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시댁 가족이 다 모이기로 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난 눈앞이 깜깜해졌다. 저녁은 뭘 해 먹어야 하냐고 묻자 남편은 “우리 집 그렇게 안 깐깐해. 중국집에서 그냥 시켜 먹자”라고 했다. 늘 직선적이고 털털해 보이기 까지 하던 시댁이라 난 바보같이 그 말을 믿었고 내 발등을 찍고 말았다.


 부랴부랴 집에 돌아오고 곧 시댁 식구들이 도착했다. 결혼한 시언니네 가족까지. 방 두 개에 작은 거실인 신혼집은 시댁 가족으로 꽉 찼다. 

 "저녁은 뭐 먹을까?"

 드디어 내가 나올까 봐 떨고 있던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만둣국 재료 있잖아, 그걸로 만둣국 해 먹자." 이러는 게 아닌가. 난 안된다고 그건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사다 놓은 거라고 절박하게 말했다. 갑자기 조금은 어색해진 공기. 그 속에 언짢음. 남편의 제안으로 중국집을 배달하기로 했지만 뜨뜻미지근한 반응.


 그렇게 지나간 줄 알았다. 다음 날 난 다섯 시에 일어나 재료를 준비해서 시댁으로 갔고 떡만둣국을 끓였으나 만두가 다 퍼져버려서 결국 또 요리에 실패하고 말았다. 야속한 시여동생은 방에서 나와보지도 않고 잠만 자고 있었고 먹는 둥 마는 둥 설거지를 하고 큰 집을 향했다. 큰 집에 도착해선 시할아버님 산소를 올라갔다 내려와선 20인분의 상을 차리고 20인분의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이 집, 저 집 들려서 인사를 드리고... 내가 친정에 도착한 건 거의 밤 9시가 되어서였다. 친정에 얼굴을 비치고는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 끝났어. 어쨌든 명절이 끝났어.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안도감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아쉬워하던 어머니의 표정이 생각나 이내 서글퍼졌다.

 




 그리고 난 다음에 시누이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그날 짜장면 시켜먹은 거 어떻게 생각해?"라고 시작된 설교는 한 시간도 넘게 나의 다른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들과 나열되어 끊임없이 날 공격했고 난 계속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혼난 그날 난 잠을 자지 못했고 제대로 말대꾸도 못한 나 자신이 싫고 한심해서 그리고 분해서 몇 년 동안은 냉장고 문을 열다가도 올라오는 억울한 마음을 한참을 다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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