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드워드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읽고
미주리 주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사리 농대에 진학한 당신은,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가계를 이끌어 주기를 바랐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영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었고, 결국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당신은 영문학자로서 눈부신 업적을 남기지 못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학문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으나, 수십 년을 이어온 동료 교수 로맥스와의 악연이 강단 생활 내내 당신을 괴롭혔습니다. 젊음과 동경으로 다가온 이디스와의 결혼은 행복한 가정에 대한 꿈을 안겨주었지만, 곧 엄혹하고 온기 없는 껍데기만 남은 가정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당신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딸 그레이스마저 아내의 허영심에 이끌려, 결국 그 시대 중산층이 바라는 겉보기에 만족스러운 신붓감으로 변해가며 당신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이렇듯 외롭고 고독했던 인생에서 햇살처럼 다가온 이는 후배 강사 캐서린이었습니다. 교정의 끝자락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서 밤늦도록 함께 문학을 연구하고, 나뭇잎이 화면을 가득 메운 교정을 거닐며 나눈 대화 속에는 깊은 공감과 따뜻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 또한 로맥스의 모함과 당신의 우유부단함으로 끝내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왜 캐서린과 함께 하지 않으셨나요? 그것은 당신이 주변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오던 회색 빛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삶이 실패와 좌절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화려한 명성이나 큰 행복은 없었지만, 오랜 세월 묵묵히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문학을 나누고, 책을 쓰며 보낸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고독한 길이었어도 그 속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신념을 지키고,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끝내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당신이 세상에 남긴 흔적이였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환경과 타인의 기대 혹은 압박 속에서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눈앞의 기회를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부모님이 평생 즐거움 없는 노동에 몸을 바치고도 조금도 윤택해지지 않은 땅속에 묻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듯이, 당신 역시 유일하게 남긴 책 한 권마저 아무 쓸모가 없을지 모른다는 자각을 끝으로 인생을 마칩니다.
스토너라는 인간의 삶 속에서 한 가지 진실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우리 삶은 큰 업적이나 눈부신 성과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평범하게, 때로는 고독하게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이며, 인생의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부디, 이제는 모든 무게를 내려놓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