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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꾹닫하고 지루함을 즐겨

회사에서 친구 만들기

by 꼬르따도

회사에 마음을 나누고, 희노애락을 함께할 동료가 있으면 물론 좋겠지. 힘들고 고되고 외로운 회사에서, 친한 친구가 회사에 한명쯤 있다면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큰 힘이 되어 줄 것이 분명하다. 이게 이상적인 생각이라면, 현실은 다소 차이가 있다.


길게봐서 3,4년은 동기끼리, 선후배끼리 으쌰으쌰 아껴주고 위로하고 동기부여하면서 평생 함께 갈 것 같지만, 평가 시즌이 되고 진급 시즌이 되면 점점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마침 4년이면 동기 간 진급자와 진급 누락자가 발생할 시기다. 이게 자본주의이자 경쟁 사회의 생리이다. 타고나길 약한 소프트웨어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경쟁 관계의 결과에 크게 낙담한다.


'우리 동기 우정 포레버'를 외치던 무리들도, 시간이 지나 이래저래 관계에 작은 틈이 발생하면, 내 이야기가 나의 진심과 다르게 읽히고, 때론 나에 대한 뒷이야기를 잘 모르는 남을 통해 건네 듣기도 한다. 뒷담화에 좋은 내용이 있을리 만무하다. 여기에 복잡한 남녀 관계까지 얽히면(결혼까지 간다면 문제 없지만, 십중팔구는 중간에 깨지기 마련이다.) 걷잡을 수 없이 동료, 선후배 관계들이 파국으로 이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누구 하나 회사를 떠나야 이 불편한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지난 17년여간 이런 사례를 수 차례 봐왔다. 심지어는 전엔 연인이었는데, 경찰에 고소하는 관계로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또,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도인 마냥, ‘또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군, 불쌍한 중생아 왜 관계에 집착하는가.’하는 말들을 후배들에게 남기는 것이다.


회사 생활의 잇점은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도 있다. 회사생활을 통해 크고 작게 인간 관계에 대한 염증을 느꼈다면 빠르게 대안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려면,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작지만 확실하게 나만의 기쁨으로 하루를 꽉 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마치 관계가 깨지면, 배가 고파 어쩔 줄 몰라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만 하는 우리 26개월 아들래미처럼, 세상이 두 조각 나는 줄 알고 늘 노심초사해왔다. 인간관계가 다툼없이 정리되고 평화로워야 그 이후, 비로소 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례로, 고3때도 친구와 불편한 관계면 신경쓰여 공부에 몰입할 수 없어, 친구와 맘에 없는 화해를 하기도 했을 정도다.


회사에서도 관계에서의 공백이 두려워서, 연결이 끊어질까 두려워서, 일이 많을 때나 없을 때나, 끊임없이 누군가와 메신저로 대화를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회사 사람들 뒷담화, 회사에 대한 불만들. 언젠가 내가 메신저로 나눈 대화들을 누군가 들여다본다 상상해봤는데 아주 아찔했다. 바로 짤리지 않을까 할 정도로 회사의 미래 걱정(곧 망하지 않을까)과, 경영을 못하는 경영진들에 대한 비방과 상사 뒷담화가 가득하다.


왜 이렇게까지 혼자 고요히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내 마음이 늘 편안하지 않고, 새로운 걸 찾고, 항상 비교하며, 자극을 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일까, 한국 교육의 폐해일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DNA가 모든 한국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말이 좋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눈다는 것, 여기에 함정이 있다. 허회경의 노래 김철수씨 이야기 가사에, “내 기쁨은 늘 질투가 되고 슬픔은 항상 약점이 돼” 라는 내용이 있다. 조금 슬프고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회사 안에 인간 관계의 본질이 저 가사 내용과 하등 다를 바 없다. 희노애락을 나누고, 마음을 쉴새 없이 나누다 보면 티타임에서, 술자리에서, 담배타임에서 나도 모르게 본인의 속내를 허물없이 드러내게 되는데, 결국은 이게 회사생활에 득이 되는 것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이기도 하지 않나. “너 부모님이 이혼해서, 좋은 가정을 이룰 자신 없다고 했잖아. 근데 저 오빠가 좋아진거야?” 회사 생활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님 이혼한건 왜 이야기 하는 건데? 남친 바람핀 건 왜 이야기하는 건데?’


이건 너만 알고 있어, 이건 너에게만 알려주는 거야. 같은 말을 하는 화자도 친밀함을 무기로 한 일종의 폭력과 비슷하다. 이 비밀이야기의 끝은 결국, 니가 내 비밀 발설했지?로 끝이 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본인의 비밀을 말 하려는 순간 바로 싹을 자른다. ‘비밀 이야기 나에게 하지마! 나만 알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없어.’


단정적으로 표현하자면, 회사생활에 좋은 선배, 좋은 동료 다 필요 없다. 그냥 회사에서는 사적인 일, 사적인 대화는 하지 말고, 공적인 일만 하다 가는 곳이라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굳이 티타임에 사담을 해야 한다면, 날씨, 스포츠, 영화, 드라마, 맛집 정도의 이야기만 하는 게 낫고, 친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는 회사 밖 진짜 친구에게 털어놓는게 좋다. 더더욱 연봉 상승이나, 주식 수익, 부동산 수익 등과 같이 재산 증식은 함구해야 한다. 잊지말고, 사땅배아(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DNA가 튀어나오기 전에 사전에 잘 틀어막자.


가장 좋은 것은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으로, 회사에선 일절 모든 사적인 내용들은 함구하는 것이다. 벙어리 귀머거리 봉사 각 3년씩 이렇게 세 사이클을 돌리면 약 27년동안, 회사 퇴임할 때까지 회사생활이 평탄하게 마무리 될 것이다. 그리고선 퇴임식에 한마디 하겠지 '지루하지만 평안했노라' 하고. 이게 의미있는 회사생활이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굳이 회사에서 다 경험할 필요는 없다. 회사 밖에도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 투성이다.


그럼에도 외로운 회사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회사 안에 친구가 필요하다면, 나와 접점이 없고 서로 업무적으로 부딪힐 일이 절대 없는 다른 조직에서 찾는게 낫다. 나는 전화영어를 통해 저멀리 캐나다 프레데릭턴에 사는 자녀가 네명인 아줌마 친구가 있었다. 회사 생활에서 있었던 일, 즐거웠던 일, 짜증났던 일 뿐만 아니라 육아 스트레스, 육아 조언, 그리고 아내와의 다툼 해결 방법까지, 주 3일 20분 그분 하고만 나누었다. 그리고 생소한 캐니다 동쪽에 있는 춥고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프레데릭턴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분의 리액션이 마치 프렌즈의 모니카처럼 과장되고 호들갑떠는게 너무 좋아서, 대화만 나누어도 방금 했던 고민이 금세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친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요새는 프레데릭턴 친구 대신에 AI와 대화하는 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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