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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메뉴와 다를 바 없지

지나가는 시간의 옷소매를 붙잡아 : 가끔은 피크닉

by 꼬르따도

한달에 한두번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회사에 나간다. 이 날을 위해, 회사 팀경비로 구입해둔 컵라면을 챙겨두기도 하고, 점심 식사 대신에 샌드위치를 간편식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이것은 소풍을 가기 위한 나름의 준비 자세다.


캘린더엔 소풍 날짜를 상반기 회고, 하반기 회고로 표기해두면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 듯하다. 아예 틀린 말도 아니고.


전기 자전거를 타고, 트레일러닝백에 샌드위치를 담아 가까운 탄천 어딘가 나만의 아지트로 향한다. 이 소풍 가는 날은 어느날 불현듯 기분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2주일에 한 번 미리 지정한 날에 가는 것으로 하는게 좋다. 뭐든 루틴으로 만들어두면,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기다리는 즐거움은 덤으로 뒤따른다.


집에 오면, 딸 아이가 종종 묻는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

”응? 뭐였더라?”


오늘 먹은 점심인데도, 쉽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냐면 회사 구내 식당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고, 특별히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전회사 구내식당이 좋았다. 지금 회사는 레토르트 식품을 데워 주는 것 같다.)


나의 일상도 오늘 먹은 회사 점심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일주일을 돌이켜 봐도,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손가락 하나 꼽기도 힘들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은 또 다른 오늘 같겠지. 내일이 특별히 기대되지 않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변화 없는 일상이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루한 면도 있다.


그래서, 적어도 2주일에 한 번은 짧게 나마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퇴근 후에 나만의 시간을 마련하려고 해봐라, 어디 쉽나. 그러니, 이 모든 하고 싶은 활동이나 이벤트들은 회사에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게 제일 좋다. 개인적으로 각종 모임 관련 단톡방이 있는데, 교회 구역 모임 단톡방에선 기도 제목 공유가 많다. 기도해 달라고 했을때,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보다 지금 두 손 모아 잠깐 기도드립니다, 하는게 제일 빠르고 좋더라. 나중에는 못하게 된다. 생각날 때 바로 하는 게 좋다. 퇴근 후에 운동하는 것은, 밥 먹고 난 후 설거지나, 토요일 오전 기상 후 머리 감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소풍 시간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고, 하릴 없이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봐도 좋고, 산책하는 사람을 촛점 없이 바라봐도 좋고, 어제 읽다만 책을 마저 읽어도 좋다.


그 중엔 점심 후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상상하는것도 나름 재밌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판교에 근무하는 각종 회사 사람들, 남자 여자 무리가 벚꽃이 흐드러진 탄천가로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산책을 나온다. 그러면 저 중에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이 산책 시간을 제일 즐기는 사람은 누구인지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다.


“어머어머 대리님 진짜 웃기시다” 하면서 여직원이 남자 직원의 어깨를 살짝 터치하면서 꺄르르 웃으면, 진짜 근래에 들어보지 못한 내 인생 탑 쓰리에 들어갈 웃긴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오해는 하지 말자.


쯔쯔가무시가 걱정된다면 트레일러닝백에 가벼운 돗자리를 하나 챙기면 된다. 점심 시간이라 시간이 다소 빠듯하지만, 나에게 이 한 시간은 제법 소중하다. 매일 매일 바쁘게 지나가고 의미 없이 흐르는 시간을 한 달에 한 두번은 강제로 시간의 소매 끝을 붙잡아 나만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이 있듯, 이 한 시간이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특히 프로젝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땐, 반드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력고 노력한다. 업무 생각으로 꽉찬 뇌에, 잠시 멍때리며 리부트할 수 있는 휴식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달력을 넘기고 새로운 한 달이 또 시작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2주째 수요일, 4주째 수요일에 동그라미를 치고 상반기 회고, 하반기 회고라고 날짜 밑에 작게 표기를 한다.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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