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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언젠가 뭐라도 되겠지

오후 세시 : 팔굽혀펴기

by 꼬르따도

팔굽혀펴기를 매일 100개씩 하고 있다. 한 번 할 때 30개, 30개, 40개. 마치 외주 개발 용역 시 착수금, 중도금, 잔금 비율로 갯수를 채운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줄어든다고 하니, 하루 10~20분 정도 시간을 내서, 근육량을 높이는데 시간을 할애해 보자. 운동을 하는 이 시간동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놓는 걸 잊지 않는다.


하루 중에 제일 지루한 시간인 오후 3시쯤이 팔굽혀펴기에 시간을 할애하기 딱 좋다. 이 시간은 햇볕이 거의 수평으로 창을 통해 들어온다. 사람들이 잘 안들어오는 적당히 후끈한 빈 회의실을 골라 운동을 한다. 이때, 스쿼트도 같이 하면 좋은데, 스쿼트가 의외로 허리 건강에 좋지 않다는 기사를 읽은 이후로, 스쿼트는 운동 목록에서 뺐다. 대신, 그 자리에 쉐도우 복싱을 추가했다.


누군가 회사에서 기분을 언짢게 한 직원을 가상의 상대로 두고, 원 투 원 투 어퍼컷을 날리는 것이다. 이때 가상의 상대가 눈치 못채게 엇박으로 나가는 전략을 펴기도 한다. 원 투 원 투 원 훅. (투가 들어갈 자리에 깊숙하게 훅을 집어 넣어 타이밍을 뺏으면, 상대가 꼼짝 못한다.) 쉐도우 복싱을 진심을 다해 하면, 이것만큼 훌륭한 유산소 운동도 없다. 금세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건 금상첨화고.


쉐도우 복싱할 때 BGM은 록키의 OST로 하자. 얼마 전 록키 영화를 다시 봤는데, 마지막 씬이 다시 봐도 너무 좋더라. 12라운드까지 경기를 무승부로 마치고서 얼굴이 찢긴 채로 여자친구의 이름인 '아드리언'을 외치는 그 장면. 이기고 지고는 나중 문제고 12라운드까지 버틴 게 록키 발보아에게 경기의 목표였다. 1979년작인데 그 흔한 클리셰 없이, '아드리언'하고 절규에 비슷한 톤으로 외치는 록키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영화가 바로 끝나버린다. 낭만 그 자체!


나는 팔굽혀펴기를 100개 하는 시간이,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레이시 아브람스의 '21'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운동을 마친 적도 있다. 자세가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의식하지 않고 그냥 한다. 제대로 하는 것보다 일단 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편이다. 제대로 하려다가, 그 핑계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해야 할 일은 생각 없이 그냥 하는 것이다.(물론 자세가 좋으면 더 좋겠지만.)


어느날은 팔굽혀펴기를 하다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나의 시선과 청소하시는 분의 시선이 만나 어색한 순간도 있었다. 땅바닥에서 위를 향하는 나의 시선과 청소를 하기 위해 바닥을 쳐다보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우연찮게 마주친 것이다. 민망했다. 그 이후로, 행여 비슷한 일이 발생하까 걱정되어 창 반대편으로 머리를 돌리고 팔굽혀펴기를 한다. 민망하지만 계속 하는 것이다.


하루 100개 팔굽혀펴기한다고, 삼시 세끼 시금치를 먹으며 헬쓰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뽀빠이를 당해낼 재간은 없지만, 이 시간이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운동할 시간을 영영 놓친다. 앞서 얘기했듯, 하고 싶은일이나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회사 시간을 활용하는게 최고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한다는 자세로.


- 전전 회사에선, 점심 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늘 회사 헬쓰장에서 운동을 하는 연구원이 있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운동복으로 갈아 입지도 않고, 구두를 신고 사복을 입은 채로 어깨 운동만이라도 하고 갔다. 입고 있던 니트가 터질만큼 근육이 화가 나서, 꿈틀대는게 옷 밖으로도 느껴졌다. 진짜 운동에 열심이구나 싶었는데, 얼마 후에 퇴사를 한다는 것이다. 들리는 소문엔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 창고를 사서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코인 채굴을 했고, 그로인해 돈을 수백억을 벌었다 한다. 나는 뭐 저기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이, 대박 아이템으로 수조원의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만큼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려, 딱히 부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 저만큼 몸을 만들만한 의지력이면 뭐라도 했을 사람이야, 하고 바로 납득이 가는 것이다.


회사에서 시간을 쪼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언젠가 뭐라도 되어 있겠지 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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