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필로그] 특별할 건 없지만 만족할만한

by 꼬르따도

회사 생활이 지루하지만, 회사 생활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상처도 많이 받고 스트레스도 받고, 매일매일이 지옥일 때도 있었지만 회사 밖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미생의 대사인 '회사 안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를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저도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 일 말고 다른 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릴 만한,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은 없습니다. 괴롭고 힘들더라도, 회사는 나름 안온한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텨야죠, 별 수 있나요.


뒤늦게 돌이켜보면 내 성향상 약사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생각은 합니다.


어렸을 때 작은 섬마을에 살았습니다. 그곳에 약국이 세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약국을 운영하던 젊은 약사님은 제게 약사로 사는 장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주민들의 삶의 현장에 있으니 일상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돈벌이로도 나쁘지 않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젊은 약사님은 시골에서 5년 일하고, 광주에 신혼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약국은 다른 도시에서 오신 약사님이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시골의 약국은 그런 식으로 돌아갑니다. 제 친구도 부부 약사인데 연고지도 없는 경북 상주에서 약국을 운영합니다. 따로 집 밖에 있는 창고에 와인보관소가 있다고 합니다.


돈벌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다소 속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굳게 발을 내딛고, 단단한 일상을 유지해야 합니다. 주춧돌이 단단해야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서울에 자가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학원에 보내고, 가끔 해외여행 가고, 맛있는 거 먹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민학생때 교회에서 자매 결연 맺은 서울의 한 교회를 통해, 서울 여행을 온 일이 있습니다. 그때 육삼빌딩 전망대에 오른 일이 있었는데, 그때 보는 풍경과 마흔이 넘어 보는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마흔이 넘어 마천루에서 서울 시내를 바라보면, 서울 시내에 있는 건물에 마치 숫자가 메겨 있는 것처럼 아파트의 값어치가 보입니다. 저 많은 아파트들 중에 내 집 하나 없구나 하는 허탈감이 일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울 변두리에 살면서 강남 근처로 이사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이 뾰족한 수가 있나요. 유리지갑에 벌이는 뻔해서 투자의 귀재이거나 어디에서 일확천금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강남 입성은 요원한 일입니다. 갈 수록 어려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직이 된다는 건, 일단 돈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전문직의 삶은 내가 알 수 없으니, 내가 경험한 회사 생활을 토대로, 회사 생활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작은 노하우들에 대해 썼습니다. 사실, 오랜 시간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본인만의 루틴이 자리잡기 마련입니다. 저는 회사에 오면 바로 어제 사용한 커다란 텀블러 하나와 스타벅스 컵 하나를 회사 세면대로 가져가서 깨끗이 씻고, 텀블러에는 1리터 가득 물을 채우고 컵에는 일리 디카페인 커피 하나를 타 옵니다. 업무로 눈 코 뜰새 없이 바쁠 때 빼고는 대체적으로 이 시리즈에 기술된 루틴들을 잘 준수하는 편입니다. 오후 세시엔 팔굽혀 펴기를 하고, 저녁을 먹기 전엔 영어회화를 합니다. 점심 때는 빼먹지 않고 왕복 2km 정도의 산책을 하거나, 가벼운 러닝을 합니다. 그리고, 제법 친해진 타 팀의 사람들과 가끔 티 타임을 갖습니다. 어제의 스포츠 경기나 주변 맛집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이 루틴들은 내가 회사생활을 기복없이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기복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회사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축복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과거 제가 경험했던 힘들었던 과거와 마주하는 일은 조금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제 회사생활은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기에 금세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제 자신의 회복력을 신뢰합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나, 과다한 업무량으로 인해 지칠때면, 남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내기전에, 신발끈을 다시 질끈 묶습니다. 밖으로 나가 가볍게 러닝을 하거나, 땀이 찰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걷습니다. 뛰거나 걸을 때는 내 감정이나 업무량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지면에 닿는 발바닥의 감촉에만 신경을 씁니다. 그러면 한결 낫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먹다 남긴 물은 옆에 화초에 뿌립니다. 컵을 내려놓고, 노트북의 전원을 끕니다. '내일 봬요!' 인사하고 가방을 챙깁니다. 팀 사람들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습니다. 관계에 특별한 구멍도 없고, 회사에서 크게는 아니지만 나름 능력도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회사 셔틀에 올라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눈을 감습니다. 특별할 것 없지만 만족할 만한 하루입니다.



keyword
이전 20화사랑이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