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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돌아왔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by 꼬르따도

지금의 아내는 2013년 가을 합정의 교회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머 오빠, 여기서 다 보네."


그녀는 대학교 동아리 후배였다. 대학을 졸업한지 6년만에 다시 만난 셈이다. 못본 사이 뭘 먹었는지

예뻐졌다.


"이 교회 다녔어? 근데 왜 그동안 못봤지? 아무튼 우리 담에 밥 먹자."


우연한 만남과 짧은 대화였다. 한국인이 헤어질 때 하는 의례적인 인사였다. 언제 밥 같이 먹자는 말이 진짜 밥 먹자는 말은 아니지 않나. 그냥, See you later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교회를 2008년부터 다녔는데 5년만에 우연히 만나, 2주 후 또 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다.

"오 또 만났네. 이번엔 약속을 확실히 잡자, 다음 주에 점심 어때? 전화번호는 그대로야?"


아내의 점심 먹자는 말은 그냥 의미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배고 고파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 직감했다. 아내와 점심을 먹게 된다면 그녀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걸. 나는 서른 셋이었고, 아내는 당시 스물 아홉이었다. 당시 기준으로보면 우리 둘다 과년한 나이여서 지금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레 만나게 되면 틀림없이 결혼까지 가게 될 것이었다.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지 1년만에 식장을 잡았고,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지 10개월만에 그 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와 데이트를 하면서 본 첫번째 영화가 겨울왕국이고, 첫째 딸과 처음으로 함께 본 영화가 겨울왕국2 이다. 아내는 겨울왕국을 보고선 너무 재밌었다며 아이처럼 즐거워했고, 딸아이는 여름에도 화려한 엘사 드레스를 풀착장으로 즐겨 입는다. 재밌었다며 아이처럼 활짝 웃는 아내의 표정을 보는 나의 눈엔 사랑이 가득했다. 서투른 발음으로 렛잇고를 부르는 딸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사랑스럽다. 사랑의 결실로 사랑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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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맞벌이 부부이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없이 아이 둘을 키운다. 육아와 업무로 지친 아내는 좀처럼 웃질 않고 늘 지친 표정이고 어딘가 모르게 성이 나있다. 오늘 새벽엔 내가 씻는 소리에 잠이 깨서 지하2층에 있는 자동차를 일층으로 옮겨놨단다. 나는 아내가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침실이 아닌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 새벽에 어딜 다녀온거야?"

"차 좀 옮겨놓고 왔어."

하면서 배시시 웃는데, 그 웃음이 너무 예쁘다. 맞다, 저 환한 웃음에 반한 것이지. 좀처럼 웃지 않고 피로에 찌든 얼굴만 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아침부터 마음이 밝아진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도 돌보고, 집안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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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아이유, 박보검이 나오는 '폭싹 속았수다'를 이어서 본다. 벌써 여섯번째 편이다. 태풍으로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쏟아지는 배경이다. 나도 섬에서 태어나서 저 비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잘 안다. 셋째 동명이는 밥을 먹다 말고 까치발로 장농위에 있는 사탕을 꺼내려다 그만 사탕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첫째 금명이가 다쳤다는 금명이 친구의 말에 애순이는 셋째를 혼내다가, 놀라서 아이들을 집에 두고 첫째를 찾아 폭풍우를 뛰어 간다. 드라마의 모든 상황과 장면이 비극을 향한 복선임에 틀림없다. 아침 출근길부터 비극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드라마를 금방 꺼버렸다. 이번편의 제목은 '살민 살아진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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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금요일에 퇴근을 하고 부산에 갈 계획이었다. 형이 아이들과 놀아달라고 부산으로 초대를 했다. 그래 모처럼 부산 좋지. 부산행 버스를 예약할 찰나, 팀장이 내게 업무를 맡겼다. 금요일 다섯시에 업무를 맡기고선 월요일 오전에 보자고 한다. 팀장은 다른 팀원들과 함께 회사를 떠났다. 아마 술자리를 갖는 모양이다. 나는 버스 예약을 포기하고, 늦게 남아서 혼자 일을 했다. 익숙한 일이고 익숙한 상황이다.


다음날 부산에 있는 가족 중 한명이 세상을 떠났다.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주말에 상을 치루고 수요일에 회사에 돌아와 여느날처럼 또 격무에 시달렸다. 사업계획 시즌이었다. 격무는 슬픈 생각을 잊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살민 살아진다.


문득 내가 그 날 부산에 있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오는 것만 빼면.


일하다가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만 빼면.


슬픔은 무뎌지고 그렇게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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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팀장 무리들은 내가 금요일에 홀로 야근을 하던 순간에도 협력사 임원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한다. 일상은 이토록 버겁다. 그 날 내가 해야 했던 업무는 재무 숫자를 변경하고 변경된 수치를 기준으로 보고자료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급하고 중한 일일까.


마침 서서히 지쳐가던 찰나였는데, 그들의 향응 접대 사실은 '세상에 기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하며 마음에서 솟아 나는 샘물이 바짝 말라버린 내 마음속 화약고에 우연히 떨어진 담뱃불과 다름 없었다. 부싯돌에 작은 불이 순식간에 화약고에 달라 붙은 것처럼 불덩이는 건조한 건초더미를 먹이삼아 금세 불어났다. 눈이 뒤집혔고, 다 엎어버리고 싶었다.


모르면 몰랐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들과 더 이상 함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첫째를 재우고 밤에 일어나 팀장과 일을 더 하고 싶지 않다고 바로 메일을 썼다. 그들이 금요일에도 향응을 받았는지 단란한 곳에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회로가 끊어진 머릿속에서 나는 한없이 정직하고 나약한 피해자였고, 그들은 세상 문란하고 비겁하고 부도덕한 나쁜 놈들이었다. 그들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들기 위해 내 머릿속에서는 발생한 사실에 살을 붙이고 비약과 과장으로 포장하여 그 스토리를 더 비극으로 부풀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들이 실은 그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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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지쳐가고 갑자기 폭발한 덕에 회사에서는 '취급 주의' 관심사병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회사에서 더 말라죽기 전에 황급히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두 곳의 회사를 더 다녔지만 그곳에서처럼 매정한 사람들을 만난 일은 없었다.


어느날은 향응을 접대한 협력사 임원에게 전화해서 그 술자리에 누가 배석했는지 따져 물었다. 협력사 임원은 마치 독립투사라도 되는 것처럼, 독립운동을 한 동료는 누구냐고 묻는 일본 순사의 물음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함구하는, 이를테면 그런 종류의 남자였다. 하지만 자기편에서만 의리가 넘치지, 내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 실장님께 나의 무례함을 그대로 폭로하는 가벼운 입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덕분에 다음날 기획실장에게 불려가, '자중하라'는 따끔한 충고를 받았다.


기획실장님은 내가 퇴사하던 날 내게 20만원을 돌려주셨다. 그 돈은 회사 동료 둘의 다툼을 중재한 댓가였다. 내가 그 중재를 위해 쓴 술값을 반올림으로 계산해서, 실장님께 청구했고, 서대리님은 정확한 사람이니 딱 맞게 20만원을 드린다며 봉투에 돈을 담아 주셨다. 나는 실장님이 주신 20만원에 내 돈 20만원을 보태 회사 앞 카페에 선불을 달아, 그동안 나와 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커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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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는 나만큼 수줍음이 많다. 교회에서 율동을 할 때나, 공개수업에서 발표를 할때 특유의 부끄러움으로 소극적인 포즈를 취하거나, 기어가는 목소리로 모든 사람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그걸 보는 나의 마음은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재수할 때 같은 반 친구들과 3개월동안 인사를 못하던 내가 떠오르기도 하고. 한 발짝 더 다가가면 세상은 더 다채로워질텐데. 좀 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유치원 체육대회에서는 자원해서 이어달리기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꼴찌하면 어때, 넘어지면 어때 하는 산 교육을 보여주고 싶었다. 교회에서도 첫째가 더 즐겁게 교회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주일학교 교사를 금방 수락하기도 했다.


그런 딸아이는 나처럼 수줍음이 많지만 나와 달리 사랑이 넘친다. 어느 날은 하교를 하여 집에오자마자 둘째를 돌봐주는 이모님께 '항상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해요.'라는 편지를 수줍게 건네기도 했다. 이모님은 감동한 나머지 그 편지를 본인 집 냉장고에 붙여 두고 늘 집을 나서기 전 읽어본다고 했다. 그 편지에는 다양한 색깔로 표현한 하트가 가득했다. 이모님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아이는 처음봤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은 이모님 본인 쉬시는 날, 시간을 쪼개 주말에 첫째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함께 놀고 햄버거도 같이 먹고 오기도 했다. 베푼 사랑이 다시 돌아왔다.


나는 빌런들을 통해 회사 생활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회사 생활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환멸이 몰려왔다. 상황을 믿지, 사람은 믿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염불처럼 외고 다녔다. 마음을 더 이상 다치지 않기 위해 사전에 싹을 자르기로 했다.


새로운 회사로 옮길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사적인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사무적으로 일만 해야지. 받는 것 만큼 주고, 대접 받는 것만큼 대우해야지. 내가 수행한 업무는 실제보다 좀 더 과장해서 어필해야지. 기브 앤 테이크를 정확히 따지는데, 그 전제 조건은 먼저 주는 게 아니라 받은 만큼 줘야지.


하지만, 딸 아이는 그런 계산식에 익숙하지 않고 수줍지만 풍성하게 늘 먼저 사랑을 베푼다. 베푼만큼 사랑은 돌아오는 걸 딸아이를 통해 깨닫는다. 세상은 이처럼 말랑한 것인데, 나는 너무 오랫동안 비관에게 마음을 내줬는지도 모른다. 마음 껏 베풀어도 전혀 손해받지 않는다. 베푼 것보다 더 큰 게 돌아온다.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표현한 사랑이 차고 넘쳐 마음에 기쁨이 넘실댄다.


어느날 회사에 어려움을 겪는 동료가 대화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제가 부족하지만 기도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눈물이 났다. 사랑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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