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정거 하지 않게

by 꼬르따도

금요일 저녁 예상보다 빨리 동네에 도착해서, 평소 가보고 싶은 동네 식당에 왔습니다. 미용실에서 ㅇ대기없이 바로 머리를 자른 덕에 한시간 정도의 알리바이가 있어요. 아내에게 들키지 않을 자유시간입니다.


딸아이 눈높이 데려다 주면서 오며가며 보던 곳이고, 언젠가 가봐야지 벼르던 곳입니다. 제육하고 맥주 한 잔 시켰는데 제육이 너무 너무 맛있어요. 불향이 가득하고 야채가 아삭한게 시키자마자 조리에 들어간게 분명합니다. 다음엔 시그니처인 스지볶음을 먹어볼 생각입니다. 혼자 오기엔 다소 양이 많지만 친구가 없는데 어떡하나요. 혼자라도 다 먹어야지. 아, 진짜 맛있다! 열량 고려해서 대신 탄수화물은 먹지 않습니다.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동네 맛집 찾았습니다. 야호.


지난 주말엔 연차 이틀을 써서 괌에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남들 다 갈 때 말고 연휴 다다음주에 가면 사람 아무도 없다면서 쾌적한 괌을 보러 가자고 전략적으로 지난주에 다녀왔습니다. 호텔이나 비행기값도 저렴해요, 연휴보다. 진짜 비교적 사람도 적고 날씨도 쾌청해서 전반적으로 쾌적했어요. 날씨도 적당히 덥고.


괌은 처음인데 너무 신나더라구요. 경치야 말해뭐해 예술이고, 적당히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져 균형이 꽤 좋았습니다.

물론 환율이 올라 물가가 비싼 거 빼구요. 맘껏 먹지를 못하고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스테이크를 시키고 싶지만 아내 눈치를 살펴 스테이크가 조금 추가된 덮밥류를 시켰습니다.


아이스 커피 한 잔에 5달러인데 환율 고려하면 한 잔에 9000원입니다. 게다가 메가커피보다 맛이 덜합니다. 대충 물가 감이 오실까요? 그래서 첫날 이후엔 호텔에서 햇반 돌려 먹었어요. 가져간 동원 볶음김치를 곁들인. 해외에서 먹으면 그건 그대로 또 맛있어요. 수영 끝나고 먹는 사발면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애들 데리고 식당에 가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둘째가 식탁에 올라가고 테이블 아래를 기어다닙니다. 가만히 있질 않아요. 우리는 소리를 연발하죠. 휴, 그러느니 숙소에서 밥을 대충 때우는게 훨씬 낫습니다.


괌은 자연경관이 너무 수려해서 그 자연을 잠시 빌려 누리다가 생각합니다. 너무 흔해서 금방 식상해집니다. 왜 이 좋은 환경은 여기에만 있을까 대한민국에 조금 빌려줬으면 좋으련만.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 구글 지도에서 괌을 찾아보면 아찔합니다. 커다란 바다 가운데 작은 섬이 하나 있습니다. 망망대해에 홀로 튜브 타고 떠있는 점처럼, 우주 가운데 유영하는 그런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면 또 나는 얼마나 작은가, 우주 속에 내가 하는 걱정은 얼마나 덧없는가 따위의 생각도 합니다.


괌은 제주도의 1/3 크기입니다. 20분만 운전을 하고 가면 그곳을 교외라고 해요. 도심에서 벗어나면 금방 원시자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울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복작복작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괌에선 커피 한 잔을 시키면 20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조급하지 않아요. 조급한 사람은 아내와 나, 한국인 뿐입니다.


*


괌의 수도(자치주이기 때문에 수도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는 하갓냐입니다. 하갓냐에 가면 관광지가 아니라 진짜 서민들이 사는 괌의 평범한 얼굴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곳의 스페인 광장에서 잠시 뙤약볕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야생개가 뛰어놀던 병아리 한마리를 물고 유유히 떠납니다. 만 7세, 2세인 우리 아이들은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겁을 잔뜩 집어 먹었어요. 마침 병아리 엄마 암탉이 꼬꼬댁 큰소리로 울부 짖었거든요.


저는 그 공포심을 없애려고 일부러 이야기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병아리가 멀리 갈 곳이 있어 택시를 불렀어. 저 들개가 말하자면 택시지 택시."


"근데 왜 목을 콱 물었어?"


"목을 문 게 아니야. 목이 흔들리니 흔들리지 않게 꽉 고정한거야. 안전벨트랑 비슷해."


"근데 왜 엄마는 우는거야?"


"우는게 아니야, 안전운전! 강서구요! 소리치는거야"


그러자 안심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때 눈치없이 아내가 말을 얹습니다.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죠.


"제이야, 그러니까 사람으로 태어난게 얼마나 다행이니?"


*


3박4일 짧은 휴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메일은 또 얼마나 쌓여있던지, 정신이 하나 없어요. 이틀 자리를 비웠다고 일이 산더미입니다. 내 존재감이구나 생각하면 나름 의미가 있죠, 일이 쌓여있지 않는 거 보다 나의 부재를 불편해 하는 편이 낫습니다.


점심 시간에 팀원들과 커피숍에 갔습니다. 커피 석 잔을 시켰는데 10분 걸려 나왔습니다. 점심 시간이니까요.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런데 카페 매니저가 늦게 나와서 미안하다면서 할인 쿠폰을 줬습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반응이 나오겠어요. 빨리빨리.


우리는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요?

대한민국의 시계는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는지 불과 24시간전 공간에서의 사람들이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달라 흠칫 놀랍니다.


이렇게 시계의 태엽안에서 정신 없이 챗바퀴를 돌리다가 퇴직 이후, 태엽이 갑자기 멈추면 어색하고 적응이 안될 것 같습니다.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노는 방법을 모르는 이치랄까요. 태평양 한 가운데 툭하고 떨어지고,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가늠이 안되는 바다의 부피에 지레 겁을 먹을 수 있습니다. 준비 없이 회사 밖으로 나온다면 망망대해와 같이 남겨진 시간의 볼륨에 깔릴 수도 있겠죠.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조금 느리게 갈까 합니다. 45세의 속도를 맞추려구요. 10년 후 퇴직했을때 가속도를 고려하지 않아 급정거하지 않게.


급정거는 위험합니다. 서서히 속도를 늦춰야죠.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빨리 가면 뭐해, 예상도 못한 들개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눈에 먼저 띄는 내 목을 콱 물어서, 어디론가 물어가 버리면 어떡하나요.


그러니 눈에 안띄게 속도를 늦춰, 고개를 반쯤 숙인 상태로 중간에 서서 천천히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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