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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가는 길 : 기대와 여운 사이에서...

메켈레와 파리오케스트라 : 프랑스 관현악곡

by 헬리오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이 글은 세 편으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다.

첫 번째는 지휘자 메켈레의 공연을 향해 가는 길에 떠오른 생각들과 그의 연주에 대한 나의 인상,

두 번째는 그날 무대에 오른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과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

세 번째는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을 담아낸 내가 사랑하는 두 음반을 소개하며 이날의 음악 산책을 끝맺으려 한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 연재 (16)


메켈레와 파리 오케스트라 : 프랑스 관현악곡

2025년 6월 14일, 롯데콘서트홀 – 기대와 여운 사이에서...


첫 번째 이야기 : 지휘자 메켈레의 공연을 향해 가는 길에 떠오른 생각들과 그의 연주에 대한 나의 인상.


롯데 콘서트홀로 향하는 길,

내 마음은 이미 반쯤 공연장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밤의 공기조차 공연의 일부인 듯, 발걸음마다 현악기의 서주가 깔리는 듯했고, 도착하기도 전에 음악은 내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이날의 지휘자는 클라우스 메켈레.

나로서는 두 번째 내한공연 관람이다.

1996년생으로 아직도 20대의 나이.

그러나 그의 이름은 이미 유럽 최정상의 오케스트라 세 곳, 오슬로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 그리고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를 동시에 이끌며, 요즘 세계 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지휘자다.

지금의 그는 2차 대전 직후, 하늘을 가로지르듯 유럽을 종횡무진 누볐던 카라얀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런던, 밀라노, 베를린, 잘츠부르크, 파리를 휘몰아쳤던 그 이름처럼, 이날의 무대 위에는 또 다른 젊은 질풍이 서 있었다.


무대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의 존재감은 파도처럼 번져 객석의 시선을 한순간에 휘감았다.

날렵한 체구에 완벽하게 맞춘 블랙 수트, 때로는 나비 넥타이의 클래식한 장식까지.

지휘봉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듯 그는 온몸을 쓰며 음악을 몸속에 옮겼다.

팔이 공기를 가르고, 어깨가 박자를 흔들며,

심지어 무릎이 굽혔다 펴지는 순간, 음악은 소리가 아니라 육체가 되는 듯했다.

점잖은 클래식의 경건한 무대가 순간적으로 팝 공연의 뜨거움으로 바뀌는 찰나, 관객은 무대와 관람석 사이의 거리를 잊는다.

그의 비주얼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여성팬들의 열광은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나 시선의 표피를 벗겨내면, 그의 몸짓 속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와 숨겨진 질서가 있다.

큰 동작은 흥분이 아니라 설계였고 격정은 즉흥이 아니라 균형이었다.

그는 이렇게 젊음을 소비하지 않고, 젊음을 건축한다


내가 처음 메켈레를 만난 건 유튜브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이었다.

그 끝없는 긴장 속에서 뼈대를 선명히 드러내던 해석은 내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과도하게 뜨겁지도, 차갑게 식어 있지도 않은 절제된 분출 속에서 음악은 불필요한 장식 없이 핵심만을 드러냈다.

그 후 시벨리우스, 베를리오즈, 스트라빈스키, 라벨까지

그의 지휘는 언제나 음악의 심장을 직접 꺼내 보이듯 구조를 명료하게 드러냈다.

그의 레퍼토리는 넓어서 바로크 음악에서 심지어 현대음악조차 낯설지 않고, 복잡한 리듬과 불협화음마저 명확한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현재 가장 뜨거운 지휘자’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부르고 싶다.

모든 음악을 쉽게 다가오게 하되, 결코 얕게 만들지 않는 지휘자.

음악의 심장을 짚어내면서도 그 맥박 속에 젊은 피의 뜨거움을 심어 넣는 사람.

그가 지휘대에 서는 순간, 나는 음악이 하나의 살아 있는 육체라는 것을 믿게 된다.


한마디로 음악을 살아있게 만드는 지휘자.

그의 지휘를 들을 때면, 음악은 단순히 울려 퍼지는 소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내 앞에서 숨 쉬고 움직인다. 첼리스트 출신답게, 그는 현악기의 결을 마치 빛의 스펙트럼처럼 세밀하게 갈라내어 보여준다.

마치 서로 다른 빛깔의 유리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이루듯, 각 성부는 독립적이면서도 전체를 향해 합쳐진다.

그 안에서 리듬은 뼈대이자 맥박이 되어, 곡 전체의 서사를 지탱하는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명료함은 차가운 분석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핀란드 출신답게 메켈레의 음악에는 북유럽 겨울의 숨결 같은 냉철함과 동시에, 얼음 밑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같은 내적 열정이 공존한다.

그는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핵심을 더 빛나게 끄집어낸다.

그래서일까,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복잡한 현대음악조차 쉽게 다가오고, 고전의 익숙한 레퍼토리도 낯설 만큼 새롭게 들린다.

불필요한 장식과 과잉된 해석을 덜어내고 남은 뼈대 위에서 그는 다시 그의 음들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서 그만의 음악적 건축물을 만들어 간다.

그 단순하고 투명한 핵심. 그곳에야말로 그의 지적 명료함과 감정적 순도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나는 그의 연주를 차가운 겨울 대지 위에 뜨겁게 번져가는 불빛에 비유하고 싶다.

멀리서 보면 차갑고 고요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빛은 강렬하고, 은근히 따뜻하다.

눈 속에 갇힌 불씨가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것처럼, 그의 음악은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뜨겁게 피어난다.


DECCA에서 나온 최초의 음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음반을 들어보자.

여기서 오슬로 필과 함께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의 첫 악장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 투명한 사운드, 현악기의 유려한 리듬, 목관의 섬세한 표정들, 모든 것이 긴장과 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호흡하고 있다.

그는 남미 지휘자 두다멜처럼 열광적으로 들떠서 리듬을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어보아도 확연히 그 차이가 드러난다.

그는 북유럽 지휘자다운 냉정한 이지성을 견지하면서도, 그 차가운 외피 안에서 뜨거운 피를 끓게 만든다.

바로 그 간극, 그 이중성이야말로 메켈레의 음악이 매혹적인이유다.


그의 시벨리우스를 듣는 경험은 눈부신 스펙터클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스펙터클한 경험은 오래전 존 바비롤리가 할레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한 연주에서 느낄 수 있다.

그의 연주는 반대로 서늘한 새벽 공기 속에서 문득 느껴지는 체온, 차가운 호수 위에 일렁이는 작은 햇빛의 반짝임 같은 체험이다.

음악이 쉽게 다가오되, 결코 얕지 않다는 것.

바로 그것이 메켈레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며, 내가 그의 음악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https://brunch.co.kr/@brunchbluesky/134


https://brunch.co.kr/@brunchbluesky/135



Dmitrij Schostakowitsch: 7. Sinfonie C-Dur op. 60 »Leningrader Sinfonie« ∙

hr-Sinfonieorchester – Frankfurt Radio Symphony

Klaus Mäkelä, Dirigent


https://youtu.be/GB3zR_X25UU?si=ZOTvpZvV5vbP8tEk


Sibelius: Symphonies 1-7; Tapiola; 3 Late Fragments

Orchestra: Oslo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or: Klaus Mäkelä


https://youtu.be/CuZjJ5ghp-A?si=JOtxlYqxfFBcRQ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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