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빛을 다시 보여준 얀 리시에스키의 쇼팽의 전주곡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그의 전주곡은 맑았다.
연주는 마치 삶의 첫 장을 막 펼친 듯한, 청춘의 숨결을 지니고 슬픔의 무게를 모르는 청춘의 빛이었다.
그 빛은 투명한 생기로 피어나, 서정의 물결로 넘쳐났다.
24개의 풍경 속에 스며든 청춘의 숨결은,
새벽 공기처럼 서늘하고 비 온 뒤 나뭇잎처럼 반짝이며 오래도록 객석에 머물렀다
오늘 밤, 피아노 앞에 앉은 얀 리시에스키는 무대 위의 빛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두 번째 내한 공연이다. 지난번에는 쇼팽의 야상곡으로 청중을 만났고, 올해는 쇼팽의 전주곡을 품고 예술의 전당 국제음악제 무대에 섰다.
1부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으로 문을 열어, 라흐마니노프와 바흐, 메시앙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전주곡을 이어 들려주었고, 2부는 오롯이 쇼팽 전주곡 Op.28 전곡에 바쳐졌다.
건반 앞에서 그는 쇼팽의 전주곡을 빛과 바람처럼 열어 젖혔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은 채, 맑고 투명한 음으로 24개의 풍경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이 곡은 쇼팽이 20대 후반에 작곡한 작품이고,
리시에스키 역시 1995년생으로, 마치 그 당시 쇼팽의 나이와 맞닿은 감성으로 이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루바토는 절제되어 있었고, 감정은 조용히 다듬어져 과장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의 깊이를 다 드러내지도, 삶의 무게를 짊어진 듯하지도 않았다.
아직 모든 슬픔을 다 알지 못하는 듯했기에, 오히려 더 맑고 더 빛났다.
연주는 그렇게 새벽 공기처럼 서늘하고, 비 온 뒤 나뭇잎처럼 반짝였다.
이렇게 그의 건반에서는 여전히 젊은 심장이 뛰고 있었다.
특히 리시에스키 피아노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하나는, 그가 건반 위에서 길어 올리는 투명하고 영롱한 음색이다.
그 소리는 마치 수정으로 깎은 물방울이 빛을 머금고 공중에 떠 있는 듯,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공기 속에서 맑게 번져간다.
그의 음색은 단순한 연주 기술이 아니라, 투명한 팔레트 위에 번져가는 색채의 물결처럼 흐른다.
청각이 느끼는 투명함은 시각의 색채로 번지고, 다시 청중의 내면에서 시간의 결을 만진다.
그리하여, 리시에스키의 쇼팽은 현실의 소리를 넘어 추상의 세계에서 빛과 정적의 형태를 조형하는 예술이 된다.
그의 쇼팽은, 특히 야상곡에 이르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곳에는 단순한 선율이 아니라, 달빛이 피아노 위에 내려앉아 밤의 숨결과 함께 흔들리는 한 편의 시가 있다.
한 음, 한 음이 떨어질 때마다, 청중의 귀에는 마치 오래된 편지 속 문장이 천천히 낭독되는 듯한 정적과 여운이 스민다.
그리고 이번에 들은 전주곡에서도, 그 음색은 탁월하게 맞아떨어졌다.
쇼팽의 전주곡은 짧지만 응축된 감정과 순간의 색채를 담은 작은 우주다.
리시에스키의 손길은 그 우주에 빛과 공기를 불어넣어,
각 곡이 하나의 창이 되어 서로 다른 계절과 하늘빛을 열어 보였다.
이러한 맑음 속에서, 우리는 한동안 잊고 있던 청춘의 빛 한 조각을 다시 보았다.
그 여백 속에서 객석은 숨을 쉬었고,
한때 잃어버린 줄 알았던 빛의 질감을 되살려냈다.
그것이 이 밤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1부 – 빛과 색채, 그리고 울림
1부,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의 첫 음이 울리는 순간, 객석의 공기가 맑아졌다.
그것은 단순한 쇼팽의 전주곡이 아니라,
마치 창문을 열었더니 빛과 바람이 함께 들어오는 시원한 오후 같은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빗방울’은 여름 오후, 소나기가 지난 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었다.
반복되는 음은 차갑지 않고, 물결처럼 반짝이며 객석을 적셨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하늘 같은 청량함, 그렇게 오늘 밤의 빗방울로 연주회는 시작되었다.
이어서 메시앙의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건반 위에는 빛이 묻어 있었다. 빛의 삼원색이 번갈아 피어올랐고, 그 색채들은 부딪힘 없이 겹겹이 스며들었다.
화려함은 소리로 그린 스테인드글라스였고, 나는 빛이 음악으로 변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2번(Op.3)과 5번(Op.23)은 피아노의 화려함을 온전히 드러내는 연주였다.
2번은 깊은 종소리와 어두운 화성 속에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감정이 숨 쉬고 있었고,
5번은 장중한 행진 속에서 눈부신 음향의 폭발이 일어났다.
거대한 울림 속에서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관현악적 피아노가 살아 있었다.
역시 쇼팽, 메시앙,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은 저마다 색깔이다 다르다.
리시에스키는 각 곡의 고유한 색을 읽어내어, 그 색채를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2부 – 쇼팽 전주곡 Op.28 전곡
리시에스키의 연주는, 음반으로 들어보면 맑고 서정적이며 동시에 지적이다.
감정에 과도히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품고 있다.
꽉 짜여진 구조가 아니라, 여백이 있는 열린 공간의 연주다.
오늘 무대에서도 그는 음 하나하나를 길게 붙들지 않았다.
대신 투명한 소리로 건반 위를 가볍게 걸었다.
루바토는 억지로 늦추거나 재촉하지 않았고,
감정은 솟구치지 않고 잔잔한 수면 위의 잔물결처럼 번졌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았고, 환희를 밀어 올리지도 않았다.
대신, 맑고 투명한 소리로 24개의 창을 하나씩 열어젖혔다.
4번에서는 슬픔마저 무겁게 내려앉지 않았다.
바닥까지 가라앉는 끝없는 비탄이 아니라, 한 번의 깊은 한숨 후 남는 고요 같았다.
6번 나단조의 종소리는 선명하게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오래 울리지 않고 금세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 짧은 울림 속에서 빛이 머물렀다.
15번 ‘빗방울’은 여름 오후의 소나기였다.
반복되는 음은 태양빛이 흐르는 물결처럼 반짝이며 객석을 적셨고, 그 청량함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하늘 같은 청량함, 그게 오늘 밤의 빗방울이었다.
마지막 24번 라단조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바람을 가르듯 건반 위를 달렸다.
무대 위에는 파괴의 폭풍이 아니라, 빛을 향한 질주가 있었다. 결말은 무겁게 닫히지 않고, 여전히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해 흘러갔다.
https://youtu.be/4qc0emiH_WA?si=F4sHcbpqz4AsF_0b
리시에스키의 청춘의 전주곡 덕분에 좋아하는 쇼팽 전주곡 음반이 하나 더 늘었지만,
실황으로, 자유롭고 유기적인 루바토와 음색의 미세한 농담을 표현하는 탁월한 연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전주곡은 여전히 러시아 피아니스트 소콜로프의 연주다.
그의 숨결은 오래된 향처럼, 지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스며와 울리고 있다.
소콜로프의 전주곡은 노년의 인간적 숨결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겁기만 한 노년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은 노년이다.
이 노년의 연주 안에는 누구의 연주보다도 생명의기운이 넘쳐난다. 그 생명의 기운은 달관의 경지에 있지만, 여전히 뜨겁다.
각 음은 마치 방금 숨을 내쉰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건반 위에서 공기가 흔들린다.
그는 24개의 곡을 거대한 서사로 묶지 않는다.
각 곡은 하나의 인간적 표정이 되고, 그 표정들이 이어져 삶의 복잡한 얼굴이 드러난다.
이렇게 소콜로프의 전주곡에는 노년의 지혜와 인간적인 떨림이 함께 깃들어 있다.
그는 더 이상 삶을 심판하지 않고, 모든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위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그의 연주는 들을수록, 끝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인간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연주는 더욱 서늘하고도 깊은 슬픔을 품고 있다.
그는 곡마다 미세한 호흡을 불어넣는다.
4번은 노년의 침묵 속에 찾아온 흐르지 않는 메마른 눈물이다.
그 여백의 깊이는 무한하며, 음과 음 사이의 정적이 말보다 많은 것을 전한다.
슬픔은 이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거부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연주는 슬픔조차 품은 평온이다.
6번은 저녁 종소리의 명상이다.
미세한 떨림으로 시작해 공기 속에 녹아드는 종소리,
그 사이의 침묵을 오래 붙들며 죽음을 알리기보다 삶이 끝날 때 찾아오는 평온을 전하는 듯하다.
15번 그의 ‘빗방울’을 들으면, 반복되는 고독 속에 떨어지는 눈물 같다.
그러나 그 눈물은 한탄도 후회도 아니다. 삶을 다 살고 난 자의 고요한 회한이다.
폭풍 같은 감정은 이미 지나갔고, 남은 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떨어지는 물의 소리뿐이다.
24번 라단조는 폭풍 속의 고독이다. 그 속에서도 그는 숨을 쉰다.
폭풍조차 이제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마지막 바다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듯한 결말, 삶의 끝에서 맞이하는 화해의 폭풍이다.
소콜로프의 전주곡은 고통과 평온, 빛과 그림자가 한 호흡 안에서 섞여 있는 ‘살아 있는 세계’다.
그것은 노년의 지혜와 인간적인 떨림이 공존하는,
한 편의 심리적 드라마이고, 24가지 색채로 가득 찬 삶의 침묵과 화해의 그림이다.
소콜로프의 연주가 20대 후반 쇼팽이 의도한 전주곡인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여전히 이 연주에 손이 간다.
그리고 이제는 청량감과 신선한 감각 속에서 젊은 쇼팽의 순수한 색채를 드러낸, 리시에스키의 청춘의 전주곡도 함께 즐겨보려 한다.
https://youtu.be/NZUCq5GfsQ4?si=-tcAl1PG_KqVl5X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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