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쉬킨(피아노) & 슈텐츠 / KBS 교향악단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KBS교향악단의 연주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난 5월 오로스코-에스트라다가 마법 같은 슈트라우스를 들려주더니, 이번에는 마르쿠스 슈텐츠가 그 흐름을 이어갔다.
그동안 단원들의 역량을 하나로 세공해 낼 지휘자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이날 밤 슈텐츠는 그 응축된 에너지를 정확히 꿰뚫어냈고, 불필요한 힘 없이도 음 하나하나를 견고하게 엮어냈다
앙상블은 생생했고, 그들의 자신감은 객석을 가득 채우는 울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이날의 두 번째 곡이자 드미트리 시쉬킨이 협연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단연코 이날의 백미였다.
프로코피예프의 다섯 개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이 작품은, 그의 음악에서 두드러지는 강렬하고 정밀한 리듬감, 비틀린 유머와 익살, 그리고 대담한 조성과 현대적 하모니가 특히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런 음악적 언어 안에서 이 곡의 연주자는 치밀한 에너지와 익살맞은 표정, 예측을 벗어나는 화성적 반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능력을 요구받는다.
이날 시쉬킨은 악보 위에 놓인 이 모든 기이함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과장 없는 정제된 힘으로 그 긴장과 광기를 꿰뚫었고, 명징하면서도 냉정한 해석으로 청중을 때로는 불편하게, 그러나 끝내 매혹적으로 이끌었다.
날 선 리듬과 뒤틀린 유머를 피아노로 춤추듯 밀어붙였고,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한 대목조차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다뤄냈다.
복잡하게 꼬인 선율의 미로도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마지막 3악장에 이르러서는 피아노가 더 이상 건반이 아닌 타악기로 변모하여, 거칠고 화려한 타건 하나로 무대를 내려치듯 음악을 단숨에 매듭지었다.
그 마지막 소리가 가신 뒤에야 관객은 숨을 돌릴 수 있었고,
남겨진 여운은 서늘하고도 경이로웠다.
그리고 첫 곡, 라벨의 볼레로.
이곡은 스네어드럼의 일정한 리듬, 변하지 않는 두 개의 선율, 그리고 악기 편성의 점진적 확대라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은 거의 변화 없이 천천히 고조되다가, 마지막 순간에서야 갑작스러운 조성 전환과 함께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한 구조속에서 점층적으로 쌓아 올린 긴장과 다채로운 음색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효과로 오늘날까지 전 세계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관현악곡이다.
이날의 연주는 그 점층적 구조와 음색의 변화를 정확히 꿰뚫어 내는 연주였다.
반복되는 선율 위로 색채가 켜켜이 쌓이며, 관현악은 마치 살아있는 몸처럼 점점 뒤틀리고 확장되어 갔다.
슈텐츠는 흐트러짐 없는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며, 거대한 호흡으로 음악을 하나의 흐름으로 밀어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총주에서 트롬본과 팀파니, 전 악기가 일제히불을 머금은 듯 폭발했다.
그 찬란하고도 무자비한 절정은, 마치 음악이라는 생물이 본래의 형태로 돌변해 관객 앞에 포효하는 순간처럼 강렬했다.
첫 곡으로 배치되었지만,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인상적인 연주였다.
이런 경험은 오직 실연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음반도, 영상도, 지난밤의 생생한 에너지와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이 밤, 음악은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https://youtu.be/KDfGBmbNbMw?si=gtzIgQ62WtdNyiIt
https://youtu.be/3-E0GnKMNLU?si=I4dE6B8uX3J32VAp
https://youtu.be/KDfGBmbNbMw?si=gtzIgQ62WtdNyi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