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켈레와 파리오케스트라 : 프랑스 관현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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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의 두 얼굴을 소개하려 한다.
이 곡에서 내가 늘 찾게 되는 두 개의 연주는 제임스 레바인과 샤를 뮌쉬다.
두 연주는 같은 악보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
레바인은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고, 오르간 연주자 사이먼 프레스턴과 함께했다.
그의 해석은 화려하게 폭발하지는 않지만, 고전적 구조미에 충실하다.
현의 두터운 결이 대지처럼 단단히 받쳐주고,
관악기의 힘찬 선율이 공기 속을 파고들며, 금관은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기둥처럼 솟아오른다.
오르간의 존재감과 정교한 균형, 그리고 프레스턴의 기품 있는 음색이 한층 빛을 더한다.
프레스턴의 오르간은 단순히 하나의 음색이 아니라, 음악이 중심을 지탱하는 건축의 기둥처럼 우뚝 서 있다.
피아노와 관, 현이 투명하게 대비되는 순간에도, 오르간은 중앙에 우뚝 선 성벽처럼 장중하게 자리한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오르간과 오케스트라가 마치 대성당의 돌기둥과 그 안을 가득 메운 군중의 환호처럼 서로 겹쳐 울리며, 거대한 공간 전체가 하나의 울림으로 변한다.
그 순간 음악은 공간 속에 세워진 하나의 건축물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레바인의 연주는 균형과 기품의 연주, 독일적 건축미가 돋보이는 해석이다.
그 안에서는 화려한 색채보다, 구조가 주는 웅장함이 먼저 다가온다.
반면, 뮌쉬와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프랑스 지휘자다운 그의 해석은 곡을 화려한 색채와 드라마의 연속으로 바꿔 놓는다.
그는 다이내믹한 사운드와 프랑스적 색채의 화려함을 한껏 뽐낸다.
금관과 오르간이 서로 치고받는 듯한 순간,
그 사이를 목관이 화사하게 장식하는 장면들은 생상스가 태어난 파리의 공기를 그대로 불어넣은 듯하다.
오르간은 단순히 구조적 기둥이 아니라, 때로는 부드러운 숨결처럼, 때로는 응축되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며 오케스트라와 긴장된 대화를 이어간다.
그는 오르간을 오케스트라 속에 묻히게 두지 않는다.
오르간은 하나의 악기를 넘어, 오케스트라 전체와 맞서는 하나의 세계가 된다.
특히 4악장에서, 오르간과 금관의 대립은 불꽃이 튀는 전투처럼 선명하다.
그 속에서 명암의 극적인 대비가 또렷하게 드러나고,
청중은 음악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드라마의 무대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뮌쉬의 연주는 프랑스적 색채와 극적 명암을 교본처럼 보여주는 연주이며, 생상스의 음악이 가진 극적 화려함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린다.
이렇게 레바인은 ‘구조 속의 장중함’을,
뮌쉬는 ‘색채 속의 드라마’를 구현했다.
그리고 이날 메켈레는 그 둘과는 다른 길, ‘투명함 속의 절제’를 선택했다.
그의 음악은 화려함을 넘어서려 하지 않았고, 대신 모든 것을 얇고 정제된 호흡 속에 담아냈다.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을 향해,
언젠가 메켈레가 절제와 폭발이 맞닿는 그 순간을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다면,
그의 오르간 교향곡 역시 레바인과 뮌쉬의 음반처럼,
내가 오래도록 찾아 듣는 애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https://youtu.be/3vipdmXX8CI?si=4OSSCi4f0M9_siSM
https://youtu.be/-Fp2_BmK4bg?si=BERnSIHe7QSsn0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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