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베덴 & 서울시향 : 라흐마니노프와 브람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가을의 첫 하늘은 유난히 높고, 바람은 아직 여름의 열기를 간직한 채 차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계절의 문턱에서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가 롯데콘서트홀무대 위에 올랐다.
콘서트홀 유리벽 너머로 저녁노을이 번지고, 석촌호수의 물결은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며 은빛 결을 드러냈다.
롯데타워는 저녁 하늘 위로 빛기둥처럼 솟아 있었고, 도시의 불빛들은 하나둘 켜지며 가을 저녁의 붉은 노을과 겹쳤다. 분주히 호흡하는 서울의 기운 속에서, 가을바람은 공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홀 안에는 또 다른 가을의 시간이 열렸다.
이날 무대는 오랜만에 츠베덴이 서울 시향과 함께한 공연이었다.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와 브람스 ― 가을의 불꽃과 오랜 그리움의 불길이 만나는 조합.
가을의 초입, 그 향기 속에서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선택은 없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겨울을 재촉하듯 차갑고도 화려하고, 브람스는 가을의 사색과 슬픔으로 깊이 스며든다.
섬세한 피아노는 박재홍이 맡았고, 얍 판 츠베덴은 늘 그랬듯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균형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박재홍의 손끝은 불꽃처럼 날아올랐으나, 그 불꽃은 곧 낙엽처럼 흩어졌다.
한순간 햇살에 빛나다가 바람에 흩날린 가을날의 잎사귀처럼, 찬란했으나 오래 머물지 못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언제나 이중적이다.
겉은 화려한 기교와 유희로 빛나지만, 그 밑에는 허무와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츠베덴의 반주는 그 섬세한 피아노의 여운에 틈을 주지 않았다.
그의 반주는 정확하고 뜨거웠지만, 가을빛의 그늘은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다. 순간의 폭죽처럼 번쩍였을 뿐, 잔향은 오래 남지 않았다.
오늘의 연주는 잘 다듬어진 꽃잎 같았으나, 꽃에서 퍼져 나온 향기는 희미했다.
모든 음표가 정확히 제자리에 꽂히는데, 정작 그 사이를 흐르는 공기와 침묵, 느리게 머물러야 할 낭만의 숨결은 사라져 있었다.
츠베덴의 강하고 빠른 몰아침 속에서 피아노는 숨결을 온전히 펼칠 틈조차 얻지 못했다.
라흐마니노프에게는 피상적 화려함보다 음의 여백 속에 스며드는 허무, 깊은 서정의 그늘이 더 중요하다.
바로 그 여백 속에서 음악은 숨을 쉬고, 허무와 애수가 고백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피아니스트가 홀로 많은 부분을 이끌어가는 제18변주만큼은 달랐다.
박재홍이 홀로 빚어낸 그 선율은 잠시나마 라흐마니노프의 숨결을 살려냈다.
절제된 루바토와 풍부한 음색 속에서 가을 노을처럼 고요하고 애절했다.
그 짧은 순간, 오래전 알던 선율은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얼굴처럼 낯설게 다가와, 사랑과 그리움의 빛으로 서서히 물들며 애틋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도심의 불빛과 석촌호수의 바람마저 그 선율에 잠겨버린 듯했다.
홀로 살아난 제18변주는 박재홍이 얼마나 섬세한 연주자인지를 증명했다. 그러나 츠베덴의 지휘 속에서는 그 섬세함이 끝내 다 살아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라흐마니노프였다.
박재홍의 섬세한 피아노가 있었지만 라흐마니노프의 고독을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1부보다, 전체적으로는 2부의 브람스가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주의 팀파니가 울려 퍼질 때, 가을의 불길이 홀 안 가득 번졌다. 현악은 묵직하게 깔리고, 그 위로 뜨거운 에너지가 응축되어 불덩이처럼 솟아올랐다.
마치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을 향해 20여 년 동안 곰삭여온 사랑이 이 순간 폭발하는 듯했다.
가을이 다 타버린 듯한 열기, 숨 막히는 열정이 홀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4악장에 이르러서는 그 불길이 장엄한 환희로 치달았다. 그 순간만큼은 음악이 삶의 절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2악장과 3악장은 아쉬움이 남았다. 호른과 플루트는가을바람처럼 스며들어야 했으나,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브람스의 클라라 슈만에 대한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브람스가 20년간 눌러온 사랑의 고백을 떠올린다면, 2악장은 더 절절했어야 한다.
특히 악장이 맡은 바이올린 독주는 단순한 선율이 아니라, 오래 억눌린 사랑의 고백으로 울려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애절함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
츠베덴의 지휘에는 늘 루바토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메트로놈이 연주의 주인이 되고 음악의 심장이 되어버린 듯,그 메트로놈의 정확함 속에서 낭만과 인간적 숨결은 잘려나가 버렸다.
여백이 없는 음악은 향기를 잃고, 향기를 잃은 꽃에는 나비가 내려앉지 않는다.
오늘의 브람스는 불꽃과 불길은 있었으나 그 사이를 스쳐야 할 바람은 부재했다.
연주가 끝나고 홀을 나오자, 서울의 가을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석촌호수 위로 불빛이 길게 드리워지고, 도로 위의 헤드라이트는 강물처럼 이어졌다.
한강에서 불어온 바람은 선선했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오늘의 연주를 곱씹었다.
꽃은 분명 피었고, 불꽃은 눈부셨다.
그러나 향기는 퍼지지 못했고, 불꽃은 너무 빨리 꺼졌다.
결국 남은 것은 화려한 잔상과 아쉬움뿐이었다.
음악은 음표의 소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침묵, 여백, 향기―그것들이 모여 음악은 비로소 생명이 되고 노래가 된다.
오늘의 무대는 뜨겁고 투명했지만, 바람에 실린 향기를 끝내다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가을이라서 그런가.
그 부재가 더욱 아쉬운 가을밤의 연주였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는 좋은 연주가 많지만 이번에는 섬세한 러시아 피아니스트 루간스키의 연주를 권하고 싶다. 그의 라흐마니노프는 정교한 기술과 색채감, 구조적 균형 위에 서 있으며,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서 소리의 미묘한 울림을 들려준다.
Nikolai Lugansky (Piano)
Alexander Vedernikov conducting Russian National Orchestra, 2017
https://youtu.be/zbGajVU7CGk?si=vFsNgRE6SCoz825p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카라얀의 런던에서의 마지막 콘서트,
1988년 10월 5일 로열 페스티벌 홀의 공연을 권해본다.
그는 생애 동안 여러 차례 이 교향곡을 녹음하며 명연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이 마지막 무대에서, 이미 노쇠한 몸으로 지휘봉을 든 그는 장엄한 서막과 불길한 전조 속에 다시 한 번 불꽃을 피워 올렸다. 한마디로 거장의 늙은 마음이 마지막으로 불타오른 공연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을 향해 20년 넘게 가슴속에 묻어둔 사랑이 가장 절실하게 드러난 것이리라.
가을의 어둠 속에 타오르는 불길처럼, 카라얀은 마지막 브람스를 향해 절제된 폭풍을 끌어올렸다.
그는 사랑과 절망 사이, 감정과 구조 사이의 경계에서 균형을 놓치지 않았다. 완전한 감정의 폭발은 끝내 오지 않았지만, 그 부족함 속에서 오히려 깊이와 균형, 그리고 음색의 아우라가 짙게 배어난다.
그것은 마치 브람스가 끝내 말하지 못한 고백처럼, 클라라를향한 사랑의 잔향이 되어 남는다. 그래서 이 연주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최고의 브람스 1번’으로 남아있다.
Berlin Philhamonic Orchestra
Conductor: Herbert von Karajan
Recorded: 5 October 1988, Royal Festival Hall, London Farewell London Concert
https://youtu.be/XmgjzDvAZvA?si=oZi2uUnjdKYWSg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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