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7개의 선율 - 기억 3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것은 빛이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이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며 들었던 몇 안 되는 음반 중 하나가 바로 이 곡이었다.
그때 들은 연주는 나탄 밀스타인의 바이올린과 아바도의 지휘로 빚어진 것이었다.
이 협주곡은 그 자체로 하나의 찬란한 순간이다.
강물이 부드러운 햇살을 머금고 흐르듯, 선율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자유롭게 노래한다.
그 멜로디는 한없이 투명하며, 시간이 흘러도 스며드는 빛처럼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아마도 지금 연주되는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 가장 빛나는 곡일 것이다.
그것은 한없이 맑고 따스하며, 부드럽고 감미롭게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 때문일 것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선명하다.
어쩌면 이 곡 덕분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의 그 순간
클래식이 어렵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나에게 깨닫게 해 준 곡이었다.
첫 선율이 울려 퍼지는 순간,
바이올린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혹은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흐른다.
그 선율은 따스한 햇살 속에서 피어나는 노래처럼 울려 퍼진다.
그 안에는 평온함과 강렬한 에너지가 공존하며, 감정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펼쳐진다.
그것은 억눌린 감정이 아니라,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이다.
선율 속에는 기쁨과 생명의 힘이 넘쳐흐르지만, 동시에 어딘가 애틋한 감정도 깃들어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문득 느껴지는 덧없음과도 같은 감정이랄까?
느린 악장에서 강물은 잠시 흐름을 멈춘다.
노을이 내려앉은 강가,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시간마저 멈춘 듯하다.
바이올린은 조용히 물러나면서도 깊이 노래한다.
마치 지나온 날들을 되새기듯, 혹은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마침내 마지막 악장. 강물은 다시 달려 나간다.
반짝이는 물결, 바람 속에서 춤추듯 날아오르는 선율.
그것은 생명 그 자체이며, 기쁨과 슬픔이 한데 뒤섞인 찬란한 순간이다.
멘델스존의 음악은 말하는 듯하다.
"삶은 흘러가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흘러가는 인생을 바라보는 듯하다.
음악은 때로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고,
때로는 거센 물살이 부딪치는 협곡 같으며,
가녀린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꺾이지 않는 오래된 나무처럼 단단하게 서 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것이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인생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고, 한 편의 영화 속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음악은 단순한 선율을 넘어선다.
한 음 한 음을 새기며, 그 안에 서사를 담는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며, 바이올린은 단순한 소리를 넘어 하나의 흐름이 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나는 멘델스존의 이 곡이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이라는 영화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다.
그것은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삶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깃든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을 담아낸다.
잔잔하게 시작하지만, 거친 폭풍을 만나 거칠게 휘몰아치고, 때로는 길을 잃은 듯 보이지만 결국 바다로 향하는 운명을 따라간다.
멘델스존의 음악도 그렇게 흐른다.
영화는 몬태나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두 형제의 성장과 삶을 그린다.
맑고 투명했던 어린 시절, 햇살이 부서지는 강물 위에서 낚싯줄을 던지며 뛰어놀던 날들,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디디던 순간.
그 모든 것이 강물처럼 찰나의 빛 속에서 반짝인다.
멘델스존의 첫 악장은 그러한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바이올린은 단순히 밝고 유려한 선율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정의 깊이를 새긴다.
잔잔한 흐름 속에서도 점차 커지는 감정의 물결이 있고,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더 깊은 울림이 배어 있다.
하지만 강물은 영원히 잔잔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형제는 성장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노먼은 학자가 되어 안정된 삶을 살아가려 하지만, 폴은 자유와 위험을 사랑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강물은 점점 거친 물살을 만나고, 형제의 삶도 변화와 갈등을 겪는다.
그의 음악에서도 그러한 흐름이 이어진다.
선율은 어느 순간 바람이 몰아치는 듯 격정적으로 휘몰아치고,
바이올린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삶의 굴곡을 담아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 노먼은 다시 강가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 속에는 떠나간 사람들의 기억이 남아 있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스며 있다.
강물은 멈추지 않는다. 흐르면서도 모든 것을 품고 간다.
멘델스존의 마지막 악장도 그러하다.
그의 음악은 점점 더 가벼워지지만, 그 안에는 깊은 감정이 스며 있다.
그의 바이올린은 마치 날아오르듯 자유롭게 흐르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다.
긴 여정을 지나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해방감이다.
멘델스존은 단순한 해방감이 아니라, 지나온 모든 감정을 품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들린다.
영화에서 노먼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강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강물은 흐른다.
그 위로 반짝이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지나간 모든 순간들이 흘러간다."
나는 멘델스존을 들을 때마다 이 대사가 떠오른다.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음악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우리의 인생처럼 들린다.
이렇게 멘델스존은 나에게 삶을 이야기하는 음악이 되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단순히 아름답고 유려한 선율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음악이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 안에 삶의 모든 순간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의 선율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를 과거의 기억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도 한다.
잔잔한 강물처럼 부드럽게 속삭이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거친 물살에 휘말려 헤매는 듯한 격정적인 순간도 있다.
때로는 고요하게 흘러가지만,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불안하게 일렁인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품은 채 다시 흐름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간다.
강물처럼 흐르는 인생, 그리고 음악.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치 흐르는 강물 위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바이올린은 조용히 이야기한다.
"삶은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빛나는 순간이 있다."
기억.
그것은 흐르는 물결 속에서 스쳐 지나간 듯하지만, 어느 날 문득 떠오른다.
음악도 그렇다. 시간 속을 흘러가면서도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내 마음 깊숙이 남아 있는 것도, 그 순간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나와 함께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이 곡을 계속해서 찾는다.
깊은 산골,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으며 오래된 풍경을 다시 마주하듯, 나는 이 음악 속에서 지나간 감정들을 되새긴다.
그리고 그 수많은 해석 중에서도 가장 자주 찾게 되는 연주는, 다름 아닌 레오니드 코간의 바이올린이다.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한 이 녹음에서, 코간은 단순한 기교적 완벽함을 넘어서, 음악 그 자체가 지닌 깊은 감정을 풀어낸다.
처음에는 멘델스존의 낭만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밀스타인, 프렌체스카티,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를 즐겨 들었다.
그러나 이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단순한 밝음과 아름다움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점차 관조적이고 냉철하면서도 감성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연주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코간의 연주에 도달했다.
코간의 연주는 감정의 결이 명확하게 드러나면서도 결코 산만해지지 않는다.
그의 차갑고 정밀한 울림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서정을 담아낸다.
단단한 톤 속에서도 투명함과 깊이를 유지하며, 한 음 한 음을 꾹꾹 눌러 새기듯 연주한다.
많은 연주자들이 도입부를 가볍게 흘려보내거나 지나친 감상에 매몰되는 반면, 코간은 단순한 화려함을 경계하고, 절제된 우아함 속에서 음악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무게감을 넘어, 깊고 넓게 펼쳐지는 감정을 담아낸다.
감정이 넘치더라도 그는 선율의 구조를 유지하며, 멘델스존이 그려낸 순수한 감성과 서정성을 정교하게 조각해 낸다.
강물처럼, 그의 연주는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깊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하나의 서사를 완성한다.
그의 멘델스존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조금씩 느려지면서 내 몸이 물결의 흐름에 끌려드는 듯한 감각이 든다.
그의 선율은 물결처럼 흘러가며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보다 근원적인 감정을 일깨운다.
특히 바이올린이 단독으로 노래하는 순간, 그의 연주는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순간순간의 감정을 따라 변화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러나 불필요한 감정적 과잉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의 바이올린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결코 과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깊은 내면에서 차오르는 울림이 더욱 깊은 감동을 준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단순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깊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코간의 연주에 정착한 이유다.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Leonid Kogan (Violin) , Lorin Maazel (Cond.)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 (1969)
https://youtu.be/UgYJA5rHJDQ?si=03O167-f4H9tGV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