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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9 : 흩어지지 않은 봄

연작 9

by 헬리오스

흩어지지 않은 봄


지금,
신록이 우거진 오월의 길목에서
나는 문득 그날을 떠올린다.


비에 젖은 창 너머,
작고 하얀 꽃잎 하나가
끝까지 버티고 있던 그 모습.


밤새 창을 긁던
비와 바람의 긴 손톱에도,


벚꽃은 가지 끝에 조용히 남아

자신이 피어났음을 증언했다.


떨어지지 않겠다는 고집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끝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벚꽃은 그 연약한 진실을
사월의 바람 속에
조용히 남겼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그 조용한 저항의 아름다움만은
오히려 더욱 또렷해진다.


어쩌면 나도,
그 꽃처럼
흩어지지 않으려 했던
어느 봄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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