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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지나, 봄의 숨결로 되살아난 브람스

서울시향과 게르스타인의 피아노

by 헬리오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과 오랫동안 곁에 두었던 음반을 함께 들여다본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 연재 (9)


“추억을 지나, 봄의 숨결로 되살아난 브람스"

— 서울시향과 게르스타인의 피아노가 그려낸 5월의 협주곡 2번

2025년 5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 5월의 브람스, 아직 꽃피는 사랑 : 게르스타인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는 5월의 한복판에서 시작되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그 오랜 회상의 정원처럼 느껴지는 곡이—이날만큼은 유난히 낯설게, 그러나 새롭게 다가왔다.

5월의 브람스라니.

무겁고 고요한 늦가을의 회상을 품은 이곡이, 봄바람에 실려 피어날 수 있을까?


내가 늘 기대해 왔고, 가장 많이 들어왔던 브람스 2번 협주곡의 정조는, 나에게는 깊고 관조적인 가을의 그림자였다.

마치 단풍이 지고 난 후의 정원처럼 느껴지는 음악이라고나 할까?

한 여인을 향한 그림움만을 간직한 채 독신을 선언하고,

인생의 저녁 무렵, 자신의 내면으로 천천히 가라앉아가는

48세의 브람스.

그런 그의 관조의 그림자와 침묵이 짙게 드리운 늦가을 그림자 같은 곡.

내게 브람스의 2번 협주곡은 언제나 그런, 시간은 감싸 안은 늦가을의 노래였다.


그러나 게르스타인의 연주는 그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다.


그의 연주는 분명히 5월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명이 움트는 계절의 숨결로 가득했으며,

잔설이 녹아내리고, 나무가 움트며,

감정조차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그런 살아 있는 브람스였다.

이날의 브람스는 중후한 회상이 아니라, 여전히 자라고 있는감정,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잎들의 이야기였다.


게르스타인의 건반은 나뭇잎 사이로 흘러드는 햇살 같았다.

가볍지만 얕지 않고, 반짝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낸 리듬은 늦은 오후의 산책길처럼 변화무쌍했다.


1 악장은 꽃봉오리가 터지는 순간의 긴장감과 생기로 가득했다. 단호했지만 충동적이지 않았고, 섬세했지만 억제되지 않았다. 음표 하나하나가 확신과 부드러움 사이의 줄타기였다.


격정적이나 어두운 2 악장은 그 흐름을 이어받아, 조용한 침잠이 아닌, 속에서부터 밀려오는 내면의 힘으로 울려 퍼졌다

잔잔한 듯 들리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불안하고 진동하는감정의 물결이 있었다.

잠든 감정을 깨우듯 맑은 울림을 지녔고, 변화무쌍한 리듬 속에 격정적인 삶의 맥박이 뛰었다.

게르스타인의 브람스는 낙엽 위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피어나는 잎사귀의 물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잎새의 파열음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3악장의 따뜻한 건반의 유영이었다.

많은 연주에서 이 악장은 늘 클라라의 잔영처럼 조용히 스며들며 다가온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그것은 회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는 애정이었다

게르스타인은 이 악장에서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끝내 말하지 못한 고백들—망설임과 미소로 남은 감정의 조각들을—조심스럽게, 그러나 음악 속에 눌러 담듯 확실하게 펼쳐 보였다.

그것은 누군가를 오래 바라보는 시선, 혹은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 말을 아끼는 침묵처럼 아름다웠다.

조용히 웃으며 누군가를 바라보는 듯한 그 선율은 다정했고 따뜻했다.


게르스타인은 과거를 애도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계절을 건너고 있는 살아 있는 청년 브람스를 들려주었다. 그의 연주는 여전히 열매 맺고,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는 시간이었다.

피어나는 생명과 그 속에서 진동하는 꽃잎들의 이야기처럼,

넘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곧, 봄의 감각 그 자체였다.



* 두 개의 계절, 하나의 브람스 – 게르스타인과 박하우스를 나란히 듣다


그렇다면, 내가 이 협주곡을 두고 가장 오래도록 듣고 마음에 품었던 연주는 무엇이었을까?


단연, 박하우스의 피아노와 칼 뵘의 지휘, 빈 필의 연주다.

두 거장이 일흔의 나이에 50의 브람스를 노래했다.

이 연주는 전형적인 늦가을의 브람스,

우수와 회한이 스며든 황혼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48세의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을 향해 끝내 터뜨리지 못한 사랑과 감정—그 모든 것이 박하우스의 건반에서 조용히 흘러나온다.


박하우스의 연주는 말하지 못한 회한의 고백이다.

모든 것이 절제되어 있지만,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이 말해진다.

음표들은 뚜벅뚜벅 낙엽 위를 걷고, 그 아래 감춰진 감정의 층은 무겁고, 깊고 깊다.


1악장 시작의 호른 소리는 가을을 부르면서 말없이 많은 것을 전하고, 뵘의 성급하지 않은 한가로운 템포는 "브람스가 노년에 이런 느낌으로 이 곡을 썼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3악장에서 피아노와 첼로가 나누는 고독한 대화는,

마치 브람스의 내면에서 클라라를 향해 말없이 건네는 쓸쓸한 독백처럼 들린다.

그 수많은 3악장의 연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도 쓸쓸한 숨결로, 그저 침묵의 여운으로 남아 가슴 깊이 스며드는 연주다.

어떤 문장도 끝맺지 못하고, 어떤 음표도 다 말하지 못한 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감정의 수면 위에서 브람스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불러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박하우스의 건반에서 들리는 브람스는 단지 손가락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였고, 시간이 덮은 사랑의 잔향이었으며, 그 그림자가 조용히 세상을 뒤덮는 소리였다.

그는 사라진 사랑의 흔적, 마음이 만든 세계의 음영, 그 늦가을의 명상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렇게 박하우스의 브람스는 더 이상 연인이 될 수 없는 클라라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이미 지나간 사랑을 되돌아보는 사람의 고요한 눈빛을 닮아 있다.

그의 피아노는 온기를 잃은 손처럼 차분하지만, 그 안엔 한때 뜨거웠던 무엇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무너짐 없이 사라지는 것의 미학, 그것이 바로 박하우스의 브람스였다.


이런 쓸쓸한 독백 뒤에, 박하우스는 4악장에서 조용한 미소처럼 번지는 유머를 들려준다.

그 밝음은 철없는 유쾌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경험한 뒤에 도달한 여유와 관조 속에서 나오는 밝음이다.


박하우스는 고독과 관조를 기조로, 회환의 연주를 하였지만,

게르스타인은 사라지는 것을 연주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살아 있는 것, 다 자라지 않은 감정, 지금 이 순간의 눈빛과 맥박을 연주한다.


한 사람은 기억의 뒤편에서 사랑의 그림자를 건반 위에 펼쳤고,

또 한 사람은 빛을 따라 걸으면서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을 노래했다..

박하우스는 가을의 회상을,

게르스타인은 봄의 체온을 피아노에 담았다.


브람스의 이 협주곡은 언제나 밝음과 어둠, 장조의 외양 속에 숨어 있는 우수와 내면의 깊은 성찰을 동시에 지닌 곡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중성이, 이 작품을 듣는 우리 모두의 삶과 사랑의 이중성을 건드린다.


음악은 늙지 않는다.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같은 악보도 전혀 다른 계절을 건넌다.

어떤 이의 연주는 인생의 황혼을 노래하지만,

어떤 이는 봄날 오후의 산책처럼 걷고 또 걷는다.


그날 밤, 게르스타인은 내게

브람스를 다시 듣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이었고, 한 존재가 남긴 사랑에 대한 증언이었다.



Johannes Brahms : Piano Concerto No.2 , Op. 83

Wilhelm Backhaus (Piano) , Karl Böhm & VPO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YTgTQ2F5u4TGbVuFH0h3aTpuUZYUhVup&si=svucB9Jbgsu5VZ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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