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Empathy #Sympathy #과유불급 #과신
낮은 자존감은 극복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반대로 과도한 자존감은 자칫하면 자만심으로 흐르게 된다. 과유불급. 명심하자.
육군 중위로 진급하고 첫 보직이 9 사단장 전속부관이었다. 수행비서, 중령쯤 되는 꼰대들은 ‘가방모찌’라고도 했다. 사단장님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건 순전히 내가 운이 좋아서인데 주변에는 전속부관 기간 중 많은 고민과 번뇌에 휘말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관사에서 본청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전의 사단장님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난 일주일의 절반정도는 사단장님과 걸어서 출근을 했다. 노란 은행잎이 하염없이 떨어지던 어느 가을날의 출근길. 사단장님은 떨어진 낙엽을 밟고 걸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중위 가을에 이렇게 낙엽을 밟고 걷는 거, 참 운치 있지 않나?’ 평시의 군대지만 ‘운치’나 ‘낭만’ 같은 단어가 발 붙이기 힘든 곳이다. 그리고 사단장과 전속부관이 출근길에 나누는 일반적인 대화도 아니다. 이어진 말씀에 난 사단장님의 팬이 되고 말았다. ‘출근하면 바로 본부대장한테 전화해서 낙엽이 쌓이는 동안 전처럼 매일 쓸지 말고 한 2~3일 정도 쌓이면 한 번에 치우라고 전해라~’
군대에서 겨울에 내리는 눈을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고 한다. 물론 군사적 차원에서 눈은 순조로운 보급과 기동을 저해하는 요소라서 쌓이는 족족 치우는 게 맞다. 하지만, 낙엽의 경우는 지휘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관행이다.(이건 개인적인 견해일 수 있다.) 쉬는 꼴을 못 보는 군대에 쌓인 낙엽은 좋은 일거리다. 사단 진입로는 늘 휑하니 비어있어야 했고, 누군가는 그 휑함을 유지하기 위해 때마다 비질을 해야만 했다. 물론 그 누군가가 간부일리 없고, 말년 병장일리 없다. 사단장님께서는 이마에 별이 두 개나 박혔지만 작데기 하나의 고충에 공감하고 계셨다. 그러데 여기에 숨겨진 신의 한 수가 있다. 통상의 군대 어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 ’정 중위! 본부대장한테 진입로 매일 쓸지 말고, 2~3일에 한 번 모아서 쓸라 전해라.’는 본론만으로 끝이다. 당시엔 깨닫지 못했던, 앞단에 길게 깔린 감성적 멘트는 날 위한 거였다. 당신의 높은 감성지수를 뽐내려는 게 아니라, 중간에서 전해야 하는 내게 이 명령 아닌 명령의 이유와, 전달의 강도, 뉘앙스까지 배려해 주신 공감의 언어였다. 진정한 공감은 섬세하고, 부드럽다. 겨울철 밤새 공관 외곽을 지켜주던 경계병들에게 가장 춥고, 졸린 새벽 3~4시경에 따듯한 커피와 사탕을 돌리라던 지시도 그런 거였다. 공관병과 준비해 순찰로를 돌면, 1/3 정도는 졸고 있었다. 최전방 철책이 아니고, 전담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정예가 아닌, 본부대 행정병들이니 오죽했겠는가. 그 새벽에 졸다 깨 전속부관을 마주하면 대부분 아니 열이면 열 ‘아 죽었구나’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사단장님의 의도를 알기에 늘 커피와 사탕을 줄 때면 ‘고맙다’는 말만 했다. 교대까지 조금만 더 고생해 달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초급간부였던 난, 그 피곤함을 잘 알고 있었다. 공감은 표절이 어렵다. 가식적인 공감은 이내 곧 표가 나고, 이 역효과는 생각보다 크고, 회복이 어렵다. 그리고 순도 높은 공감은 진한 경험에서 나온다.
자존감과 공감의 질은 경험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