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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썰 May 24. 2024

지각할 결심

20240524/금/맑음

#웍스 #이모티콘

평화로운 휴무일 아침. 쉬는 날이지만 평소처럼 일어났다. 2주 만에 내려온 아들을 깨워 식탁에 앉는다. 그제 아내가 식당에서 포장해 온 김치찌개에 어제 아들 녀석과 먹다 남은 치킨으로 잡곡밥 한 그릇 뚝딱. 책상 앞에 드러눕듯 앉아 책을 편다. 체험예약 톡이 울린다. 혼자 근무할 때 방문했던 그 손님이다. 공유해야 할 내용이 있어 혼근할 동료에게 톡을 남긴다. 웍스. 쉬는 날 웍스를 쓰다니. 두 세 차례 대화가 끝날 무렵. 본사 인사팀 직원에게서 톡이 온다. 지지난주 특근 기안이 누락되었다고. 특근비 챙겨주려는 마음이 고맙다. 다시 동료에게 톡을 보낸다. 간단한 기안이니 대신해 달라 부탁한다. 잠시 후 온 답장. ‘저 오늘 휴무라서’. 이런 농담하는 친구가 아닌데? 뭐지? 둘 중 한 명은 라운지를 지켜야 하는데 둘 다 휴무라고? 순간 빛의 속도로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낸다. 5월 스케줄. 24일. 근무일이다. OMG!!!!!!!

10시 46분. 소대장시절 5분 대기조 때 보다 빠르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달린다. 평소 10시쯤 집을 나서서 30분 정도 일찍 라운지에 도착하니, 출근 시간은 통상 25분~30분. 14분 만에 갈 수 있을까? 예상처럼 이런 날엔 교통신호도 안티다. 따박따박 섰다. 미친 듯이 달려 마지막 신호에 또 걸렸다. 앞 차가 젠틀하게 멈추는 바람에 위반도 할 수 없었다. 지각할 결심. 괄약근이 풀리 듯 엑셀 밟은 다리에 힘이 살짝 풀린다.


살면서 몇 번, 지각의 기억이 있다. 그중 천재지변에 준하는 외부요인을 제하면 하나가 또렷하게 남는다.

특전사 팀장시절. 다음날 전투준비태세 훈련이 있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직속상관인 소령 선배께서 단 둘이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한창 몸이 좋은 시절이라 잠깐 눈 부치고 출근할 생각으로 늦게까지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알람을 여유 있게 맞췄으니 걱정 없었다. 눈을 막 감은 거 같은데 알람이 울렸다. 평소보다 이른 알람. 뭐지? 다시 눈을 감았다. 뭐? 다시 눈을 감았다고? 여기가 결심 포인트. 다시 잠깐 눈을 감았다 화들짝 놀라 깼다. 6시 훈련인 게 그제야 생각났다. 미친 듯 옷을 입고 주차장으로. 차가 없다. 꿈인가?  아차차, 술집 앞에 세우고 왔지. 냅다 달렸다. 새벽에 택시가 없는 동네였고, 부대보다는 술집이 가까웠다. 지우고 싶은 하루였다.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

그날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정한 시간에 늦는 사람을 쓰레기 보 듯하던 난 조금 너그러워졌다. 그렇다. 조금.


5분 지각이다. 공식 기억 두 번째. 지각하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기로 했다. 도로에서 미친 듯이 달리는 운전자도.


그 옛날의 악몽은 술 때문이었다. 이번엔 나이 때문인가?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자각할 결심.

 

신은 인간에게 실수할 기회를 주신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라고. -정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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