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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썰 May 23. 2024

나의 왼발

20240523/목/맑음/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


#나의_왼발_포스터 #멍 #추모

장거리 운전의 후유증은 여지없이 나타났다. 허리와 오른쪽 고관절이 멍~하다. 쉬는 날. 아내의 공간인 캠핑콘셉트 발코니, 캠핑의자에 앉았다. 거실 소파에 앉을까 했는데 왜 거기에 앉았는지… 알았다. 다치려고.


살짝 잠이 덜 깬 몸이었다. 폰으로 SNS를 훑다가 아는 분이 올려둔 제주도 숙소 사진에 눈이 머문다. 제주올레스테이 5인용 남성 도미토리라는데 깔끔하니 좋아 보인다. 최근 제주 올레길에 관심이 커진 아내에게 보여주려 서둘러 일어나 거실로 몸을 돌린다. 퍽! 혹은 철퍼덕!! 러그에 실내화 앞코가 걸려 휘면서 왼쪽 발가락 세 개가 꺾이면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오른쪽 팔꿈치과 오른손 엄지 쪽 팔목이 먼저 아팠고 기분 나쁜 통증이 발끝을 타고 올랐다. 부러진 줄. 효과음에 비해선 작은 부상이다. 다행이다.


어제 서산에서 만난 매니저님은 얼마 전 화장실에서 넘어져 왼쪽 광대 쪽이 함몰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실명할 뻔한 위기여서 당시에는 왜 그랬냐고 묻기도 미안해서, 어제서야 물었다. 40대 초반의 매니저님은 ‘원래 자주 넘어져요. 지난번에는 넘어져서 발목도 부러지고, 나이 드니까 더 자주 넘어지는 거 같아요~’ 밝게 웃는다. 평형감각에 문제가 있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오래전 아내가 여행 다녀오면서 사다 준, 사실상 처박아 둔 크림이 눈에 띄었다. ‘Counterpain’. 듬뿍 발랐다. 냉감이 올라오니 통증은 좀 덜하다. 오후에 보니 보라색 물이 들어 예쁘게 부풀어 올랐다. 당분간 달리기는 어렵겠네, 점심 산행은 괜찮을까?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하나? 안 부러진 게 다행이지만 조심할걸, 거실 소파에 앉을걸 하는 의미 없는 후회.


마음 아픈 날이다. 시퍼렇게 날 선 양심을 가졌던, 불의에 맞서는 용기와 품위 있는 유머를 머금은 사람. 뒤틀린 세상에서 뒤틀리지 않으려 가슴에 진한 보랏빛 멍을 품고 살았을, 사람 내음 풍기던 우리 대통령. 한 때 오해한 마음이 두고두고 미안한. 절름발이가 된 우리 시대의 꺾인 발가락. 그리운 이름에 마음의 꽃 한 송이 올린다. 다음 휴무일에는 봉하마을에 다녀와야겠다.


자고 나면 이 못생긴 발가락들은 좀 가라앉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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