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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썰 May 22. 2024

크루즈 컨트롤

20240522/수/맑음

#크루즈_컨트롤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은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아도 지정된 속도로 차를 주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아주 오래전 미국 유학 다녀온 공군 선배의 사막 횡단 썰에서 처음 들었다. 언빌리버블! 당시엔 새로 산 내 차에서 발견한 풋 브레이크도 신기했으니. 크루즈 기능은 인크레더블!!

10년 전 지금의 차를 샀을 때 설마 내 차에도 이런 기능이 있는 줄 몰랐다. 그냥 핸들 오른쪽  와이퍼 컨트롤러 아래쪽에 작고 귀여운 속도계 그림. 버튼이 있는데 눌러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 낭패 볼라. 왜 매뉴얼 볼 생각은 안 했는지, 아니 생각은 몇 번 한 거 같은데 행동에 옮길 생각이 없었다. 몰라도 운전에 별 불편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신호대기 중 한 번씩 별 기대 없이 버튼을 눌러보곤 했다.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 시승 차량 운전석에서 똑같은 놈을 만났다. 반가움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조수석 판매사원에게 물었다. 시크했다. 그렇게 차가 중고로 접어들던 시절에서야 내차에도 크루즈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막은커녕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는 시내 주행은 물론이고, 고속도로 주행 중에도 이 기능을 쓸 일은 별로 없다.


왕복 4시간 총 주행시간 여섯 시간. 서산에 다녀오는 길에 요긴했다. 평일 한산한 고속도로, 그중에도 구간속도 단속 구역을 지날 때는 앞 뒤 차량 눈치를 보지 않고 오른쪽 발이 쉴 수 있는 시간. 편리한 기능, 잘 쓰면 너무나 유용한 기능이다.


이런 유용한 기능이 없어도 운전은 가능하다. 엑셀과 브레이크. 둘 만 있으면 차는 달린다. 삶도 그랬다. 액셀을 밟아야 할 때 브레이크를 밟거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액셀을 밟으면 문제가 생긴다. 인생의 시기에 땨라 엑셀을 과감하게 밟아야 할 때와 브레이크를 현명하게 밟아야 할 때도 구분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차로 서산에 다녀왔다. 중년의 남녀 돌싱 둘과 함께 한 하루. 주로 나이 듦에 대한 각자의 에피소드와 격한 공감으로 지루하지 않았다. 4~50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액셀을 밟아야 할 때일까? 브레이크에 신경을 써야 할 때일까? 힘껏 액셀을 밟아서 지금쯤이면 크루즈 컨트롤로 속도를 고정시켜야 할 시기. 서로는 속도는 달라도 적어도 제한속도보다는 조금 높은 속도여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 속도가 꺾여버린 나. 크루즈로 달리자니 느려도 너무 느리고, 액셀을 밟아대도 속도가 잘 오르지 않는다.


운전을 즐기는 편이다. 아내의 평가로는 난폭운전자에 가깝다. 장거리 운전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젠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운전을 오래 한 날은 유독 피곤하고 여기저기 아프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에 아무도 지원자가 없으면 내가 한다. 이런 신조로 살아왔다. 이번 서산행도 그랬다. 왜 또 나야 하는 마음이 살짝 있었다. 애써 털어버렸다. 아직은 운전이 즐겁다. 날씨도 좋고, 순대국밥에 아아도 얻어먹었다. 운전자의 특권이다.


즐겁게 운전해야지. 속도가 안 나면 안다는 대로 무리하지 않고 액셀을 밟아보자. 크루즈 컨트롤러 쓸 날이 오겠지. 잊지 말자. 헷갈리지 말자. 왼쪽이 엑셀, 오른쪽이 브레이크.


서산은 멀다. 하지만, 함께한 서산길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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