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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썰 May 30. 2024

날 닮았다

20240530/목/흐림

#블루투스_이어폰 #LG_HBS850

쉬는 날. 아내는 지방 연수중. 아점으로 바나나에 우유에 말은 시리얼을 먹었다. 저녁을 당겨먹고 무심천을 달릴 생각이었다. 오늘도 그냥 넘기면 이번 주도 빵이나 떡이 될 거 같아서. 4시쯤 짜장라면 두 개를 끓이고 달걀프라이를 얹었다. 냉장고에서 오늘내일하고 있는 소시지 볶음과 처제네가(정확히는 동서가) 만들어다 준 마늘종 장아찌를 꺼낸다. 순삭. 버리지 않고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뿌듯할 수 있다니. 쩝. 식곤증이 밀려온다. 휴대폰 타이머를 15분에 맞추고 의자를 낮추고 뒤로 한껏 재낀 후 꿀잠에 든다. 알람이 울리고, 알람을 끄고…. 눈 떠보니 8시. 하~. 주섬주섬 러닝복을 입고 러닝양말을 신고 워치를 차고, 블루투스 이어폰 뚜껑을 연 순간. 아 맞다. 왼쪽은 없지. 잠깐 고민한다. 한쪽만 끼고 음악을 들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 보인다. 책상 아래 박제된 오래된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본다. 한창 달릴 때 anti-bounce 기능이 있어서 아끼며 잘 쓰던 녀석이다. 유행이 지나고 무선에 자릴 내줬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보관하고 있었다. 잘 될까? 전원버튼을 누르니 불이 들어온다. 휴대폰이 이 녀석을 알아본다. 일 년이 넘게 충전도 안 했는데 배터리도 ‘보통’이다. 잘 들릴까? 잘 들린다. 한 시간 동안 녀석과 함께 무심천을 달렸다. 음악은 달리기에 도움을 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본질적인 기능에는 문제가 없어도 목에 걸리는 게 불편해서, 줄이 불편해서, 유행이 아니어서 서서히 외면당하고 사라져 간다. 슬프지만 자연스럽다.


오랜만에 달린 녀석도 땀범벅이다. 배고 고플 거다. 밤새 충전해 줘야지. 다시 이 녀석과 달릴 거다. 음질도 나쁘지 않고 달리는 동안에도 귀에서 잘 빠지지 않는다. 오래됐지만 쓸만하다. 날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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