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토/맑음
그때 먹지 말았어야 했다. 태국의 거리.부부 노점상의 수레에 그득했던 두리안. 가족 여행길에 길거리에서 게걸스레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시원하고(생각해 보니 열대의 태국땅에서 한낮에 수레 안에 있던 과일이 왜 시원했을까?) 입안 가득 채웠다 순간에 녹아내리는 달콤함. 게다가 착한 가격. 착한 가격. 착한 가격. 거기까지.
착한 가격은 거기까지였다. 그 뒤론 여행길에도 두리안 맛 과자, 두리안 맛 사탕, 말린 두리안이 전부였다. 그나마 말린 두리안이 좋았는데 유행 따라 질소가 반.
주말에 마트에 가면 냉동 두리안 앞에서 기웃거린다. 가격표 보고 돌아서던 아내가 마침내 3만 원짜리 두리안을 주문했다. 아내의 인내심이 다할 때쯤, 아내가 처가에 갔을 때 도착했다. 잘 보관하라는 명에 따라 냉장실에 넣었다. 혼났다. 후숙 해야 하는데 냉동실에 넣었다고. 내가 분명 냉장실에 넣어둔다고 톡했들 땐 답이 없었다. 뭐… 그랬다.
색도 강도도 냄새도 모형 두리안인줄.
아내의 검색이 시작되었고 당장 후숙 작전에 들어갔다. 두리안을 반으로 잘라 박스에 넣어 비어있는 아들방에 이불을 덮어 두었다. 그리고 2박 3일 연수를 다녀왔다.
오자마자 소중한 박스를 아들 방에서 들고 나온다.
오~ 잘린다. 냄새도 좀 난단다. 익었나?
한 입 베어 물더니 ‘아! 3만 원 떡사먹었네’한다. 콩떡만 좋아하는 아내가 가끔 쓰는 말.
전자레인지에 좀 돌릴까? 한다. 이 무슨. 녹생창에 ‘두리안 후숙법’을 처 본다. 아! 이런. 아내가 시전 한 박스요법, 담요요법으로 시작해서 맨 아랫줄에 전자레인지요법이 있다.
단맛이 없을 때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면 단맛이 살아난다. 설마 했는데.
한 조각 살짝 돌려서 먹어본다. 단맛 없는 물고구마 맛이란다. 물론 난 안 먹었다. 아내 먹기에도 부족한 양. 검투사 갑옷 같은 껍질로 과대 포장된 주먹 반만 한 과육이 4~5조각.
그때 먹길 잘했다. 셋이 먹고도 배가 불렀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두리안.
사각 투명용기에 담겨서 2차 숙성에 들어간다. 입맛 다시며 3만 원 아까워하는 아내를 보니 좀 미안하다.
내일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냉동 두리안 한 봉지 사야겠다. 쓸데없이 돈 쓴다고 퉁박을 듣겠지만…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 중 한 소절. 떠오른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 둘의 기다림은 맛남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