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일/눈, 비, 갬
사장님 안내에 따라 뒷면의 이쑤시개를 빼고 크리스마스 카드 봉투 열듯 조심스럽게 한 겹 들어내니 연잎 내음이 코를 뚫고 올라온다. 사실 연잎인걸 알고 열었으니 연잎 냄새라 했지, 깊은 풀내음. 비염도 이겨낸 진한 연잎 내음. 순천의 첫 여정은 아마씨(아름 엄마 씨앗밥상)에서 늦은 점심.
연잎정식 단일 메뉴. 정갈한 밑반찬 보다 맛있는 사장님의 친절함.
어디서 오셨어요? 청주요. 청주에 친구 있는데...로 시작된 식후 토크. 손님들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신 따님 아름 씨(식당 이름에서 유추)는 유럽부터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다닌 프로 여행러. 팬데믹 시기에 여행길이 막히자 오랜 기간 차 연구를 해온 엄마에게 밥집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올해로 4년 차. 어머님은 스물다섯에 대구에서 순천으로 오신 후 순천이 살기 좋아서 38년째 떠나지 못하신다고. 순천에 물들면서 대구 친구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다는 반전 아닌 반전으로 다시 엄중한 현실로. 장사로 먹고사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 하시는 사장님의 오른손 엄지 위로 붙어있는 파스가 유난히 눈에 띈다. 감사한 마음을 주섬주섬 꺼낸 현찰로 맞춘 밥값과 거듭된 인사로 전해본다.
순천드라마촬영장을 살짝 훑고 찾은 순천만 국가정원(국정원으로 쓸 뻔)의 밤풍경은 평화 그 자체였다. 일찍 찾아온 어둠에 빛은 더욱 아름다웠고, 하늘의 달과 별은 더 빛났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逆天者亡)’ 순천에서 마지막 주문을... 내일은 구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