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6/목/맑음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작아 못 입는 바지와 후디를 내가 입기 시작했다. 버릴려니 아깝고 당근에 내놓자니 애매한 것들. 아들이 사 읽은 시집을 받아 읽을 줄은 몰랐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저녁을 굳이 저녁밥으로 생각한 것도, 시집 목차에서 동일 제목의 시를 찾으려 한 것도 머쓱하다. 슬프기까지 하다. 감이 떨어져 땅을 파고들었구나.
재수생 시절 모의고사 중 잊을 수 없는 영어문제가 있다. 장문의 예문 속 괄호에 들어갈 신체부위를 고르는 문제였다. 'dog ( )'. 내가 고른 답은 'nose'였고 정답은 'ear'였다. 글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난 나름 합리적인 추론으로 답을 골랐다. 책장의 접힌 각도와 모양에 코를 떠올린 거다. 미국 살다 온 친구는 내 항변에 '미국에서 그냥 그렇게 말해'라고 했지만 지금 보니 영락없이 댕댕이나 냥이의 귀 모양이다. 그 순간 앞에 놓인 dog을 잊고 사람의 귀와 코를 떠올린 거다. 똑똑한 바보.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딘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이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백육십여 쪽의 책에 유일하게 접힌, 아들 녀석이 접어 둔 시를 먼저 읽어 본다. 유전자의 힘인가?
작가란 누구인가. 일상적 소통을 위해서든 심오한 진리의 전달을 위해서든 모든 인간이 점차 기능적으로 완벽한 말만을 추구해갈 때, 말의 효용성에 무심한 채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자가 바로 작가이다. 조연정 님의 해설.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남은 세월동안 부자가 되는 거보다 어려울 거 같다. 그래도 부자보다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 시인으로 부자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