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0/월/흐리다 갬
김태희가 왔다. 아니 오셨다. 라운지에. 여든의 김태희.
며칠 전 저녁. 여성 고객 한 분이 급하게 마사지체어를 체험하고 가셨다. 어머님이 쓰실 부드러운 걸로. 가능하면 직접 쓰실 어머님 모시고 다시 한번 오시라고 했다.
퇴근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저녁. 지팡이 짚고 걸음이 조금 불편해 보이시는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라운지 문을 힘차게 밀며, '저 왔어요!'
'아이고 어서 오세요~' 일단 기억한 척하고 기억 속 파일을 재빨리 뒤진다. 선척후기억. 기억났다. 5일 전 그 고객.
물리치료하러 가시면 천 이백 원 내고 30분씩 안마의자에 앉았다 오신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 아 다행히 발바닥이 닿는다.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느껴진다. 강한 학구열.
차 한 잔 줘. 쌍화차 한 잔 드리고 며느님과 계약서를 작성한다. 따님인 줄 알았다. 격의 없이 친해서.
요즘 영어와 필라소피를 배우신다고 했다. 아가페를 아느냐고 하시더니 냅다 노래 한 자락을 꺼내놓으신다. 오~ 잘 부르신다. 목소리가 맑고 청량하다.
공부를 못해서 여상(여자상업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에 못 갔다고 하셨다.
에이, 어머님 그 시절 여상이면 공부 잘하셨네.
아니야, 미달이었어.
ㅋㅋㅋ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은데 소설은 배운 게 적어 어렵고 시는 한번 쓰고 싶으시단다.
나이가 들어 될지 모르겠다고.
어제 읽은 미쿡 흑인 할아버지 이야길 해드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인생이란 좋은 것이고 점점 더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98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한 남자, 조지 도슨.
25시 알아?
계약을 마치고 지팡이 짚고 나가시는 출입문 앞에서까지 질문을 던지신다.
소설이요? 게오르균가 하는 작가가 쓴 소설인가요?
죽음! 하루가 24시간이니까 25시는 죽음의 시간이야.
씨유 어겐!!
하하하
유쾌한 철학자를 보내드리며 다음에 시인으로 만날 거 같아 설렌다.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사무엘 울만의 ‘청춘’ 중에서)
젊은 나이에 자칭 백골단이 되어버린 조로(早老)의 무리를 보며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월요일 저녁.
잘 늙어야지, 아니 청춘으로 살다 죽어야지. 프라미스 마이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