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성공 #실패 #스케치
어느 날. 목표가
사라졌다.
내 사전에서 '목표'라는 단어 자체가 지워졌다. 아니, 새로운 목표가 생긴 거였다. 딱히 목표 없이 그냥 살자는. 아니, 아니다. 그건 목표가 아니었다. 버텨내야 한다는 절실함이 삶에 멱살을 잡혀 차가운 현실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그로기 상태. 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꿈은 크지만 현실은 시궁창' 정도인 줄 알았는데, 곧 꿈도 없는 시궁창에 적응하고 있었다. 희망이 없는 참담함. 무너지고, 무뎌지고, 무의미했다. 무서웠다. 밤에 눈 감기도, 아침에 눈 뜨기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살아가는 게.
반반쯤 되는 거 같다. 시골의 작은 학교였지만, 전교 1등도, 전교 학생회장도 해봤다.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고, 남들보다 1년 늦었지만 원하는 대학에도 갔다. 군생활중 위탁교육으로 석사학위도 받았고, 어려울 거라는 소령 1차 진급도 이뤄냈다. 경찰대 입학에 실패해서 노량진에서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보냈고, 여단장의 결재 거부로 장교영어반 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소령 진급 후 리더십센터 연구원 자리에 갈 수 없었고, 박사학위 도전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 반반이었다. 성공이든 실패든 삶의 마디마디마다 목표를 세워왔고, 때론 악착같이 도전했고, 때론 쉽게 포기하고 방관했다. 하지만 문제는 달성의 여부가 아니었다. 더 근원적이고 결정적인 문제. 불순한 목적, 그보다 더한 목적의 부재. 경찰대라는 목표는 사법고시 준비라는 불순한 목적(경찰이 되고 싶진 않았다). 명문대(라고 우겨본다) 입학은 목적이 결여된 목표. 불순한 목적을 향한 목표의 좌절은 차라리 다행이었고, 목적인줄 알았던 목표는 그냥 거기서 머물고 말았다. 늦은 깨달음에도 새롭게 시작할 용기도, 여유도 없었다. 뜻대로 그려지지 않은 스케치북을 찢어내지 못하고 계속 덧칠만 하다 여기까지 온 듯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 찢겼다. 다시 그릴 수밖에 없다. 미술관에 전시된 다른 이들의 그림을 보면 또다시 엄두가 안 난다.
아버지는 글 쓰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패하거나,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는 부족함이다. 네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도전하기 어렵다. 성공할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뭘 쓸지 목표를 정해라. 큰 목표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작은 목표부터 시작해 점차 목표를 키워가는 게 좋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나는···’으로 시작해라”라고 구체적으로 일러주며 “엄두가 나지 않으면 작은 일을 염두에 둬라” (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登高自卑)|한국경제신문,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나는… 다시 하얀 도화지를 마주하고 앉았다.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번엔 좀 더 신중하지만, 몸에는 힘이 좀 빠진 느낌이다. 명작을 그릴 생각은 접었다. 그냥 내가 그리고 싶은 내 마지막을 스케치해 본다. 잘 그릴 생각도 없다.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일주일 3일 이상 30분 이상 운동하기(달리기, 스쾃, 턱걸이), 매일 계획된 성경 읽어 1년 1독 하기. 아침마다 기도문 읽기. 매월 문사철 1권 독서, 점심은 다이어트식 하기 등 명확한 목적을 향해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수정하며 뚜벅뚜벅 다시 걸어야지. 예쁜 그림 한 점 남기고 가야지.
새로 만들어지는 정당들은 언제나 기존의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개혁, 자유, 민주, 혁신, 창조 등의 단어를 나열하며 세력을 규합하려고 노력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성 정치인들과 똑같이 되어 간다. 왜 이럴까?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국회의원 되는 데 있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경남신문)
그리고 내 목표가,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으며, 적어도 폐는 끼치지 않았으면, 신문에 실린 글을 읽다 다짐해 본다.
금요일이다. 이번주는 4일 운동했고, 정해진 성경을 읽었고, 아침마다 기도문을 읽었고, 고객에게 친절했고, 수요일에 글을 업로드했다. 이 글이 이번주 마지막 목표 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