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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시 20화

#긍정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벳 #단어

by 정썰

게임 하나. 알파벳 스물여섯 글자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번호를 준 뒤, 100점짜리 단어를 찾는 게임이다. 백 점짜리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해도 좋고, 성공한 삶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단어 'JOY'는 '10+15+25'로 50점이 된다. 즐거움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 정도 된다는, 또는 성공하려면 재미가 삶에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뭐 재미로 하는, 말 그대로 게임이지만, 신빙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해볼까? 짜잔~ 'MONEY'! '13+15+14+5+25=72'. 흠...(참고로 100을 넘으면 실격이다.)

-알파벳/숫자 대응


'근자감'이라고도 했고, '대책 없이 긍정적'이라고도 했다. 대화방 프로필에 '열정썰, 긍정썰, 닭강정썰'로 해두기도 했다. 좋아하는 단어 중 내 성씨인 '정'으로 끝나는 단어를 이름 앞에 붙였다. '열정'은 내게 부족한 부분이고, '긍정'은 과한 부분이고, '닭강정'은 좋아하는 부분이다. 가볍고, 철이 없고, 긍정적인 편. 어쩌면 애써 긍정적인 척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최근에야 알아버렸다. 긍정도 부정도 관성이 있다는 것을, 일단 관성이 다 한 다음엔 최소한의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황이 서서히 나빠져도 긍정으로 버텨내려 했다. 하면 되지, 잘될 거야, 실마리가 잡힐 거야, 꼬인 매듭이 풀릴 거야. 바퀴 두 개(ㅇㅇ) 중 결국 앞바퀴가 빠져 버리고(ㅜㅇ) 질질 끌리다 마침내 멈춰 버렸다. 긍정도, 자신감도 자취를 감췄다. 생활의 전반이 바뀌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부정의 시작. 하나부터 열까지 불만투성이였다. 과도하게 몸을 쓰는 일, 주말을 포함한 5일 근무, 늦 점심식사, 낮은 임금, 늦은 퇴근, 늘 꽉 찬 아파트 주차장, 밤늦은 저녁사, 모두 싫고 짜증 났다. 짜증은 짜증을 낳고, 무기력은 무기력을 낳았다. 억지로 끌어올리려는 긍정의 마음은 고장 난 가스라이터 같았다. 헛수고였다. 부정적인 마음은 부정적인 상황을 몰고 오는 듯했고, 부정적인 상황은 부정적인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부정의 악순환. 아~ 삶의 쓴맛이 이런 건가. 이대로 살아가야 하나? 아니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번전이 필요했다. 돈도, 시간도, 체력도, 인내력도 생애 바닥에 온 듯했다. 디딜 바닥이 없었다. 삶은 개펄 같았고, 늪 같았다. 우선 한 발을 디딜 곳이 필요했다. 무너진 몸을 먼저 바로 잡아야 했다. 먼저 일을 바꿨다. 일하는 시간이 좀 줄어들고, 몸을 쓸 일이 좀 줄어든 일이었다. 허리 재활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지만, 마중물은 있어야 한다. 최소한은 체력.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필요충분조건의 관계.



숨을 참고 쭈욱 가라앉았다. 미사리 조정경기장의 수심은 3미터 정도였다. 바닥이 닿을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 기다리다 박차고 올랐다. 수영을 못하던 시절이었다.(수영을 못하는데 조정부 콕스였다니 참 용감했던 시절) 허우적거리면 빠져 죽을 거 같아서 뿌연 빛이 드는 수면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뻗어 올랐다. 장난으로 날 들어 물로 던졌던 선배, 동기들이 뛰어들어 구해주었다. 2년 정도의 잠수 기간 중 난 수영을 배웠다. 하루하루 좌절하고, 혼자 욕하고, 참아내고, 비워내면서 배운 생존수영. 끝없이 가라앉았던 난, 다시 긍정의 가벼움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쩌면 땅으로 올라설 수 없을지 모르지만, 긍정에는 고도가 없다. 이제 멈춰서는 일을 없을 거다. 마중물까지 말라버리는 일은 없을 거다.


혹시, 백점 짜리 단어를 찾으셨나? 내가 아는 백 점짜리 단어는 ‘ATTITUDE’다 ’1+20+20+9+20+21+4+5=100‘ 태도가 삶의 전부다. 어렵게 되찾은 삶을 대하는 태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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