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브릭스 #프라모델 #피규어 #스토리 #넝마주이
蒐集 수집 : 취미(趣味)나 또는 연구(硏究)하기 위(爲)하여 어떤 물건(物件)이나 재료(材料) 같은 것을 여러
가지로 찾아 모음. 모으기.
오래전, 우연히 수집에 관한 명언을 본 적이 있다. 나름 수집광인 내 눈을 확 잡아끌었다. 음... 좋은 정의다. 나중에 써먹어야지. 인터넷에서 본 글이라 다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옮겨두지 않았다. 못 찾겠다. 글 첫머리에 멋지게 인용하려고 요리조리 단어를 조합해 가며 검색창에 두드려 넣어 봐도. 비슷한 내용도 없다. 아... 그때 수집해 둘 걸 그랬다.
어릴 적 기념우표, 기념주화 등을 사 모았다. 아부지가.(아버지는 매주 낙첨된 주택복권을 앨범에 모아두기도 하셨다.) 형은 관심이 없었고, 내가 관리했다. 진정한 수집이라 할 수 없지만, 취미란에 '우표수집'을 써넣은 적도 있다. 뻔뻔하게. 본격적인 수집은 다 커서(너무 커서) 시작되었다.
당시 아내와 어린 아들은 청주에, 난 서울에 살았다. 모학군단 선임교관으로 근무했는데, 석사 과정 중 소령으로 진급 후 계획대로 보직을 받지 못해 차선으로 택한 자리였다. 야전이 아니었고, 근무지역이 서울이었고, 야간대학원을 다닐 수 있는 여건 등으로 부러워하는 동료, 선후배들도 많았지만, 난 그 유익을 누릴 새도 없이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며 근무했다. 우선 임기 2년 차인 육사 하나회 출신 학군단장은 후보생들을 생도처럼, 아니 현역 군인처럼 끌어주길 바랐고(난, 장교가 될 대학생으로 지도하고 싶어 했다), (본질과 멀어 보이는) 업무량은 생각보다 많았다. 후임 단장은 육사출신 유학파, 해외근무 파였는데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학창 시절부터 스트레스를 잘 못 푸는 편이었다. 주말에 집에 내려가 있으면, 아내는 묻곤 했다. '주말에 집에 오기 싫어? 힘들고 피곤하면 내려오지 마.'('안 내려와도 돼'였나?)
생각해 보면 위탁교육 2년을 제외하곤 늘 그런 식이었다. 업무에, 지시에 휴일에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가끔 보는 처제는 아내에게 '형부 어디 편찮으셔?'라고 물었고, 아내의 말을 빌면, 금요일 밤에 내려와서 월요일 새벽에 올라갈 때까지 계속 인상을 쓰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그러던 어느 금요일, 난 어릴 적 엄청 만들고 싶었지만, 비싸서 사달라 못했던 일본 B사의 프라모델 박스를 들고 귀가했다. 아내와 아들이 잠들고 본격적인 조립을 시작했다. 설계도 대로 자르고 붙이고, 끼우면서 정교함에 놀라고, 정확함에 감탄하면서 완성하고 나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는 먹먹했지만 보기에 좋았고, 정신은 맑아지는 듯 꿀잠을 잤다. 그렇게 일주일에 하나씩 멋진 로봇을 만들어 갔다. 책장에, 책상에 틈만 나면 로봇들이 들어찼다. 어느 날 아내가 장식장을 주문해 주었다. 그럴듯한 장식장 안에서 로봇들은 빛을 발했고, 빈 공간은 일본 만화 시리즈 주인공 피규어들이 채웠고, 피규어가 남으면 장식장이 하나 늘었다. 자리가 생기면서 브릭들이 자리를 메꿨다. 다시 장식장, 여행 중 사온 기념품, 다시 장식장 음료 굿즈, 다시 장식장... 장식장은 다섯 개까지 늘었고, 내 수집 목록은 스파이더맨(내 원픽 히어로)을 중심으로 한 마블 피규어, 작은 미니카 시리즈, 대학시절 즐겨 본 농구만화 주인공 피규어 등으로 점점 불어났다. 그 정점은 아들과 둘이 다녀온 시즈오카 여행이었고, 작은 평수로 이사를 하면서 큰 장식장 세 개를 중고시장에 팔고, 작은 장식장 두 개를 쌓아 선발된 일부로 장식을 하고,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집은 중단되었다. 보통일은 아니었다. 이사 때마다 따로 포장을 해야 했고, 내 차로 별도로 이동시켜야 했다. 아들도 '이제 그만'을 제안했고, 아내는 '넝마주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했다. 병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병적인 수집의 시작은 책이었다. 아내도 책이 많았고, 나도 책 사는 건 아끼지 않아서 내 방과 거실에 커다란 책장 네 개에 책은 그득했었다. 굳은 결심 끝에 책과 책장은 모조리 정리했다. 개인적으로는 ebook이 큰 도움을 주었다.(태블릿에는 아직도 200권 넘는 책이...) 장난감은 정리가 어렵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 작은 카페에 장식할 소중한 소품이고, 아직 먼 이야기지만 손주들이 오면 하나씩 줄 계획이었다^^;
수집이 멈춘 이유는 공간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제적 문제도 아니었다.(중고거래 앱이 생겼다!!) 시간적, 정신적 이유였다. 휴일이 없어지면서, 이럴 때가 아니라는 우울한 자아성찰이 막아섰다. 하나둘씩 중고장터에 내놔야 하나? 경제적 이슈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랑거리였는데, 허세가 되어가는 느낌적인 느낌. 어릴 적 결핍이 가져온 병증. 피터팬 증후군의 발로(發露). 그렇게 몸에 나쁜 것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다시 긍정적 수집을 하기로 했다. 올해 위시리스트에 내 생애 마지막 브릭 장난감을 올렸다. 올해 말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면 반환되는 돈으로 구입할 계획이다.(물론 떨어지면 끝) 장식장을 채울 유형의 수집품은 그게 마지막이 될 거다. 이제 틈틈이 이야기와 풍경을 수집할 거다. 요즘 손님들과 제품, 판매 관련 얘기보다 사는 얘기를 더 나누고 있다. 앞으로 쉬는 날엔 가까운 곳을 여행하며 소소한 풍경을 작은 스케치북에 담을 생각이다. 그리고 쟁여둔 책에 담긴 고전의 문장과 대가의 생각들을 모아야겠다.
'수집은 관계있는 것들의 모임으로 시작되어,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의 관계 맺음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담은 생태계다.' 찾을 수 없어 내가 지어냈다. 내 수집은 계속될 거다. 존재하는 것들이 넘쳐 새로운 창조로 이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