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 #다니엘 #이지선 #오르라윈프리 #이찬수
감사할 게 없는데 무슨 감사를 하란 말인가!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상대방에게 잘해준 게 없는데, 아니 해코지했는데, 내게 ‘감사해요’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 내가 이런 사람에게 못되게 굴었구나, 난 참 나쁜 놈이구나, 앞으로 잘 대해줘야지. 반성할까? 아니면, 얘가 나 멕이는구나. 보통이 아니네. 고단수의 돌려 까기로 받아들일까. 나라면 점잖게 잘 비꼬는 사람, 위선자라고 판단할 것이다.
감사할 일이 일도 없는 2년이었다.
돌이켜보면,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청년이었다. 그땐 한 줄 바람에도 감사해했다. 광주 보병학교 소대장 교육. 훈련장 능선에 잠시 앉은 휴식. 땀에 젖었다 말라버린 전투복은 뻣뻣한게 갑옷 같았고, 방탄헬멧 지지대의 머리띠는 손오공의 긴고아(緊箍兒)처럼 이마를 조여왔다. 단추를 풀어헤치기도, 방탄헬멧을 벗기도 귀찮고 아까운 찰나의 휴식. 귓바퀴 뒤쪽으로 간지럼 태우며 타고 오르던, 가벼운 바람 한 줌. ‘감사합니다.’ 말라붙은 목줄을 비집고 흘러나온 작은 소리는 인위적이지 않았고, 가슴속에 그득하게 고여있다 꿀렁하고 넘쳐나는 느낌이었다. 손대면 토~옥하고 터질 것만 같던 감사. 그땐 그랬다.
메말라버렸다. ’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를 쉽게 흘리고 다녔지만, 푸석이는 입술에서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느낌이었고, 곧 녹슬어 멈춰버렸다. 예전엔 내가 처한 힘든 상황에서 받은 작은 위안에 감사했다면, 어느새 그 힘든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였다. 이만큼 힘들었으면, 그만큼 감사했으면, 이제 좀 그만 힘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투정? 반항?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조건부 감사’였다. 대가를 바란 거였다. 어릴 적 용돈으로 천 원을 받았을 땐 그 금액이 실로 컸고, 충분했기에 진심으로 감사했다면, 이제 이 적은 돈에도 감사하면 다음엔 좀 더 주시겠지 기대하는 거다. 그리고 이런 형식적 감사가 반복됨이 최소한의 양심에 걸려 결국엔 그마저 거둬들인 거다. 난 양심적 감사 거부자가 된 거였다.
감사가 주는 효용의 증거는 무수히 많았다.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절대 감사를 보여준 다니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귀가하던 중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55%의 3˚ 화상 후 사경을 헤매다, 40여 차례의 수술과 치료과정을 잘 극복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이지선 교수.
지독하게 가난한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촌오빠와 오빠 친구로부터 성폭행 당해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기를 낳아 살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107Kg의 몸매로 마약 복용과 여러 번의 자살 시도를 한 미혼모에서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으로 1억 4,000만 명의 시청자를 울고 웃기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감사를 통해 모범을 보인 인물들이 즐비하다.
오프라 윈프리가 변신하게 된 모티브는 매일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감사 습관이 모여 삶으로 연결되는 감사 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지선 교수는 붕대로 온몸을 감은 채 생사를 넘나드는 암담한 현실과 절망 속에서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감사거리를 찾아보자는 어머니의 말씀에 감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첫 번째 감사는 본인 스스로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화상으로 마디마디 오그라진 손가락으로 입고 있던 환자복의 단춧구멍을 찾아 끼울 수 있었다는 것, 세 번째는 다행히 발은 다치지 않아서 씻을 수도, 걸을 수도 있는 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살아있음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고 고백했고, 다니엘은 죽음을 각오한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모두 진심 어린 감사, 순도 100%의 감사였다. 그리고 그 감사의 결과는 기적이었다.
틈틈이 듣고 있는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중 감사에 관련한 영상이 유독 많다. 감사할 것이 없는 것 같은 일상 속에서 감사를 찾는 습관이 가져다준 실증적 사례들. 목사님께서는 감사는 선택이고, 훈련이고, 능력이라 강조하신다. 감사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잔소리하신다. PT 트레이너처럼.
태블릿을 열면 ‘한 줄 감사 기록하기’ 알람이 매일 떠있다. 열일곱 번째 감사에서 멈춘 지 오래다. 쓱 지우고 살았다. 자신이 없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랬다. 감사에도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주저하다 한 줄씩 남겼다.
18번째 감사… ‘새로운 한 해 감사’, 19번째 감사…‘유현 합격 감사드립니다, 20번째 감사…‘연휴 일할 수 있음에 감사’, 21번째 감사…‘분노에 느리게 반응하게 하심 감사’, 22번째 감사… ‘오운완 감사’, 23번째 감사…‘헌혈할 수 있는 건강 감사’, 24번째 감사… ’많은 내방 고객 감사‘, 25번째 감사…’ 판매 감사‘, 26번째 감사…’ 내리는 비와 맑은 공기 감사‘, 27번째 감사…’ 아내와의 외식, 아들과의 농구 감사합니다.‘ 오늘 28번째 감사를 기다리는 깜빡임에 자판을 두드린다. ’ 글을 쓰고 나눌 수 있음에 감사‘
보잘것없는 글 읽어주시고 ‘라이킷’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