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다시 25화

#조언

#잔소리 #오지라퍼 #꼰대 #총량법칙 #목표 #우선순위 #항산항심

by 정썰

오지랖이 넓은 편은 아니다. 남 걱정은 좀 하는 편이다. 특히, 그 쓸데없다는 연예인 걱정:)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는 오지랖에서 유래한 '오지랖 넓다'는 '간섭할 필요가 없는 일에도 나선다'는 의미라니, 아! 다시, 오지랖이 꽤 넓은 편이다. 랖밍아웃이라 해야 하나? 그래, 난 오지라퍼(오지랖이 넓은 사람. 남의 일에 지나치게 상관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다.

잔소리가 심한 집안에서 자랐다. 엄마는 엄하고 무심했다. 그 무심이 본래의 성품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상위 1% 잔소리꾼인 아버지의 영향도 일조했다 싶다. 아버지는 일방적, 반복적으로 집요하고 다양하게 잔소리를 시전 하셨고, 끝내 두 아들 중 하나만 남았다. 큰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없다. 학교에서 촌수를 배워온 날 아들이 '아빠, 난 큰아빠가 있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난 주저 없이 대답했다. '응, 있는데 없어.' 결혼 후 대부분의 세월을 주말부부로 살아온 아버지는 거의 매일을 전화로, 학교로 보낸 엽서로 잔소리하셨고, 집에 돌아오신 주말 동안은 복습하듯 되풀이하셨다. 형이 가장 먼저 못 견디고 뛰쳐나갔고, 뛰쳐나가지 못한 엄마는 마음의 병을 얻으셨다.(물론, 잔소리보다 더한 비아냥과 독설 등이 원인이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다짐하며 산다. 잔소리하지 말자. 조언한답시고 꼰대짓 하지 말자. 하지만 삶의 굽이굽이 어느 구간에선 맡은 바 역할을 한답시고 조언(과 잔소리의 중간쯤?)을 즐겨(?) 해왔다. 그때는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에, 또는 먼저 겪어 본 인생선배로서의 의무감으로, 때론 조언을 청해와서. (아마, 울 아버지도 이렇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른다.)


두 번째 직업을 잃었다.(첫 번째 직업은 내가 찬 경향이 있지만, 두 번째는 실질적으로 차인 게 맞다.) 중단했던 학업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다 재입학 불허로 생긴 진공의 시간 동안 옷가게에서도 잠시 일했고, 그 후 일 년 반 동안 식당에서 일했다.(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조언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다시. 거울치료라 해야 할까. 꼰대들의 꼰대짓은 꼰대를 각성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딱히 조언할 대상도 없었고, 조언할 위치나 상황도 아니었지만, 암튼 이제 조언 따위는 하지 않으리. 그냥 모른 척, 모르는 척하고 살기. 나나 그렇게 살아보기. 나중에 위치와 상황이 바뀌어도 그렇게 하기. 그런데 아들한테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아홉 시 반, 열 시까지 강행군에 몸과 맘이 지쳤지만, 아들의 입시미술학원 근처라 감사했다. 이삼십 분 차 안에서 졸다 파김치가 된 아들을 태워 집으로 오는 드라이빙. 때론 열 수 있는 창은 다 열어젖히고, 볼륨은 최대한 높이고 떼창(둘이 불러도 떼창인가?)하며 달렸고, 때론 사는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기도 했다. 다시 시작된 조언.


힘들어하는 녀석에게 각자가 세상에 나올 때 정해진 고락(苦樂)의 총량이 있는 거 같다고. 지금 어차피 찾아올 고난을 미리 꺼내 쓰는 거라고. 아빠는 어릴 적 미처 경험 못한 고난이 남아 지금 찾아온 거 같다고. 네 그릇이 클수록 고난은 남들보다 크게 와서 널 더 강하게 훈련시킬 거라고. 목표는 처음엔 조금 느슨하게, 미시적으로, 그리고 정량적으로 정하기. ‘매일 운동 한 시간씩’ 보다는 ‘주 3일 이상, 매번 달리기 5Km, 스퀏 105회, 풀업 10회’ 식으로. 시간을 중심으로 하지 말고 종목과 행위를 기준으로 정해 중간에 시간 허비하지 말기. 인생의 우선순위 잊지 말고, 순서 바꾸지 말기. 예를 들어 건강은 늘 1순위로 두고, 양보하지 말기. 순서가 바뀐 순간부터 인생도 꼬이기 시작함을 명심하기. 그리고, 항산항심(恒産恒心). 돈 벌 궁리를 할 것. 가난한 할아버지는 늘 ‘돈은 아무나 버는 게 아니라’며 부(富)를 터부시 하셨는데, 넌 벌 수 있을 만큼 벌어서 부자가 되라는 거. 단, 수단과 방법은 가리고, 나누는 일에도 신경 쓸 것 등등. 이제 수능이 끝났고, 내 조언도 끝낼까 한다… 는 무슨. 난 또 매일매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단, 이번엔 대상이 조금 다르다. 나에게 하는 조언들. 성경, 채근담, 논어, 주역, 징비록이 남겨준, 쇼펜하우어, 니체, 조이스 립, 장하준, 박준, 박참새님이 들려주는 얘기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와 경험들. 죽는 그날까지 귀에, 아닌 눈에 피가 나도록 들어야 할 조언들.


생각해 보니 난 남의 일에 나서는 편은 아니다. 혼잣말로 걱정하고, 가끔 아내에게 가벼운 핀잔을 듣는 정도니 오지라퍼는 아니다. (이 정도면 자아분열인가?ㅋ)

이제부터 진정한 오지라퍼가 되야겠다. 남은 후반전, 또 시작인 듯 달려야 하는 가여운 나에게. 그리고 아주 가끔 조언이 필요한 아들에게. 조금 더 쓰면, 눈앞의 장기판에 집중하느라 외통수에 몰릴 위기에 처한 누군가에게. 단, 아들 같아서 하는 소리는 반드시 아들에게만. 최소한으로. 이게 나에게 하는 셀프조언의 시작.

keyword
이전 24화#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