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화 #부조리 #농담
'어머니~ 이러시면 저희 다음부턴 못 와요~'
사장님 숨 넘어가신다.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깔깔깔'과 '까르르'의 중간 정도? 동료와 둘이 제육덮밥(9천 원), 돌솥비빔밥(8천 원)을 먹고 카드를 드렸다. '구천 원에... 팔천오백 원... 이면 만칠천오백 원...' 둘은 자연스럽게 벽에 붙은 커다란 메뉴를 다시 바라본다. '그 세 오백 원 올랐나?' 생각하면서. 우리 표정을 보신 사장님도 벽 쪽을 다시 돌아보신다. '돌솥비빔밥이... 아이고 아래 거 잘못 봤네.' 하시면서 멋쩍게 웃으신다. 거기에 내가 기름을 부은 거다. 카드를 받아 들고 '잘 먹었습니다~'하고 나오는데, 웃음소리가 풀럭거리는 문틈으로 새어 나와 몇 발자국 따라오다 멈췄다. 가끔 가는 김밥집에서 생긴 일이다. 셋이 함께 호탕하게 웃을 일이 생긴 거다. 짐작건대 주방에 있던 우서방(가게 이름에서 내가 추론한)도 들었다면 킥킥거리지 않았을까?(활자라 그렇지 당시 상황과 억양, 표정을 봤다면 당신도 분명 웃길 거다... 고 우겨본다.)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유머는 예상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것 사이의 정신적 불일치를 해소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한다. 18세기 후반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처음 제안했으며 이후 아서 쇼펜하우어, 지그문트 프로이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그라우만... 됐고, 아무튼 말장난에서 부조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머 경험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간주된다. 사장님은 자신의 (밥값을 오백 원 올려 부른) 작은 실수에 '괜찮아요'나 '그럴 수 있죠'라는 대답을 기대하셨을지 모른다. 의외의 말에 빵 터지셨고, 우리 모두는 자칫 어색하거나 민망할 수도 있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코미디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키워 온 내 유머감은 개그콘서트 폐지와 함께 성장을 멈췄지만, 아내와 아들의 싸늘한 반응에도 틈만 나면 말장난을 시도하며, 생활 개그맨을 꿈꾸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현타가 온 거다. 남들이 실없다 해도 개의치 않았는데, 내가 지금 말장난이나 할 때인가?라는 자성의 시간. 그 후 웃을 일도, 웃길 일도 없는 진지하고 비장한 일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처음엔 의도적이었는데, 점차 의도한 바 보다 무겁게 내려앉았다. 웃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고, 매사에 부정적이고 쉽게 화가 차올랐다. 몸은 몸대로, 맘은 맘대로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뻑뻑하고 거친 하루하루. 체액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Humor'에서 유래했다는 유머. 고대 생리학자들은 인간의 체질을 구성하는 네 가지 체액(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이 균형을 이룰 때 좋은 유머 상태에 있게 되고, 불균형이 일어날 경우 유머결여 상태에 빠진다고 했다는데 묘하게 설득력 있다. 다시 농담하며 살자.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비지 말고, 다큐 말고 예능으로 살자. 정치인들도 웃기려고 노력하는 세상인데 나도 다시 노력해 보자. 부조화, 부조리, 그래 내가 이런 각오를 하는 것 자체로 유머다. 난 생활 개그맨이다.
p.s. 어릴 적 동네 과일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사과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때마침 아무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잘 익은 작은 사과 하나를 집어서 빠르게 걸었다. 몇 걸음 걷다 양심의 소릴 들었다. 내가 고작 이 작은 사과 하나에 양심을 팔다니. 뒤돌아보니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용기를 내 돌아갔다. 고민할 틈 없이 난 들고 온 사과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좀 더 큰 걸 들고뛰었다. … 아주 오래 전 잡지에서 읽었던, 이런 클래식한 미국식 농담을 난 아직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