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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시 16화

#예배(1/2)

#크리스찬 #나이롱 #Zior_Park

by 정썰

Christian.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기독교를 믿는 사람(기독교인). 표준어로 '크리스천'.

난 '크리스찬'이다. 영문 이름 'christopher', 줄여서 'chris'. 표기는 'Chris Jeong'이 아닌 'Chris Chan'.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에 남다른 관심이 생긴 것도, 기독교인이 된 것도 국방대학교에서 석사학위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리더십학과 전공 졸업 필수과목 '크리스토퍼 리더십 코스'. 커뮤니케이션능력에 대한 기술을 개발하여 사회, 단체에서 자신의 잠재능력을 깨닫도록 디자인된 프로그램으로, 특히 '어둠을 원망하기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는 좌우명으로 대변되는 '나와 세상의 변화'라는 취지가 감동을 주었다. 명동성당 건너편 건물에서 1년은 수강을, 나머지 1년은 강사 자격을 취득해서 활동했다. 그때 알게 된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의 뜻. 'Christ-bearer'.

그즈음, 뿌리 깊은 불교집안에서 태어난(집안에 스님이 두 분, 원불교 교무님도 두 분) 내가 우여곡절(?) 끝에 아내의 권유(라 쓰고 전도라 읽는다)로 세례까지 받았으니, 이쯤 되면 운명이리라.(이런 운명론은 내 특기이기도 했다.)

사실, 날 크리스천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 처음이 대학 새내기 시절, 정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처음 보는 여학생 한 명이 다가왔다.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동아리 소속이라고 밝힌 그녀는 대뜸 '잘 살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난 '잘 살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자 바로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냐'라고 물었다. 아하... 뭐라고 대답하지? '사회적 규범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가급적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도우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라고 했다.(음~ 잘했어)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내 기준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젛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난 순간 욱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과 다르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꽤 긴 시간 얘기를 나누었고, 기다리던 친구가 늦게나마 와서 난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녀의 궤변을 잊지 못했고,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나이롱 신자를 자처했던 아내가 엄마가 되자, 육아휴직과 함께 교회출석을 결심했다. 난 처음엔 반대했다. 혼자 출석하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아이는 종교선택의 판단이 생길 무렵 자신의 의지에 맡기자 했다. 엄마 마음은 이길 수 없었다. 우는 아기를 예배실 밖에서 앉아줘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 부탁이 어떤 의미인지 감잡았던 난 추위에도 예배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몇 주간. 결국 나이롱 불자였던 난, 나이롱 크리스천이 되었다. 세례는 어찌어찌 받았지만, 성경 한 번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겨우겨우 주일 예배만 참석했고, 그나마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끝났다. 주기도문 암송도 못한 채.

세 번째 시도는 모교 학군단 선임교관 시절에 찾아왔다. 대학 후문에서 오래동안 당구장을 운영하시면서 학교전도를 사명으로 살아오신 권사님이 어느 날 찾아오셨다. 수요일 저녁에 학생 한 두 명이 참석한 예배가 시작되었다. 내 임기가 끝나면서 막을 내린 예배는 지나고 보니 날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크리스천 흉내만 내는 꼴을 더는 못 보신 거였다. 어느 순간 주일학교 소년부 교사 자릴 맡기시고, (축복의 통로가 아닌) 재물의 통로가 되게 해 달라는 철없는 기도에는 소년부 회계를 맡기시는 유머를 보이셨다. 하지만 방송국 초대 국장을 끝으로 난 주일예배도 참석 못하는, 아니 안 하는 나이롱 신자로 또다시 전락하고 말았다. 부정하거나 원망하진 않았지만, 견디기 힘든 상황의 연속에 종교적 열정은 시니컬하게 식어버렸다. 고통스러웠다. 몸도 맘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고,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욥기를 읽기 시작했다. 네 번의 통독 후에도 성경은 늘 어렵고, 낯설었다. 그냥 용기가 위안을 주리라 생각했다. 견뎌야 했기에, 견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소한의 행위였다. 그렇게 욥을 위안 삼아, 욥을 따라 시간을 버텨왔다.

업무용으로 구입한 오래된 태블릿은 언젠가부터 책으로 쓰인다. 성경도 이걸로 읽는다. 오랜만에 성경앱을 다시 켰다. 634일 느림. 5독을 목표로 시작한 성경 읽기는 그렇게 멈춰있었다. 다시 시작한다. 창세기부터. 28일 차. 하루 느리다. 오늘은 꼭 이틀분을 읽어야 한다. 이게 다시 시작하는 예배의 시작이다.

I'm still f***ing christian

Though I'm wearing new “Christian”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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