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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시 14화

#리더십

#셀프리더십 #가시나무새 #체로키_인디언 #늑대

by 정썰

‘소대장은 군생활 짧게 하고 사회로 나가~ 군대랑 안 어울려, 그렇게 하면 안 돌아가’

유원사는 베트남전 참전 경력이 있는 백전노장이었다. 행정반 책상 유리판 밑에 놓인 흑백 사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웃통을 벗은 채,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베트콩 시체를 밟고 선 젊은 날의 그. 그가 말한 ‘그렇게’. 그래 난 그렇게 했다.


어릴 적 내 생활기록부에는 항상 ‘리더십이 뛰어나고’가 따라다녔다. 친구들이 잘 따랐고, 잘 지냈다. 반장을 맡아놓고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때로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단체생활도 강했고, 급기야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어머니를 호출해서 육사 입교를 권하는 지경까지.


소대장 길들이기가 무슨 유행처럼 번져, 사회면 뉴스에 심심찮게 오르던 그때. 대차게 맘먹고 부임한 패기 가득했던 소대장은 이렇게 했다.

소대원들 호칭은 이름과 계급을 함께 불렀다.(야! 인마! 손병장! 이 아닌 손흥민 병장~), 욕설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소대원들 몸에 손이나 발을 대지도 않았다. 까라면 까!라고 하지 않고, 가급적 이유를 설명해 줬다. 바빠서 내 두발상태가 불량할 때는 상급자의 지적에도 두발지적을 하지 않았다. 미안할 땐 사과했고, 고마울 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초장에 군기를 잡으라며 꺼리를 잡아 내무실 TV를 박살 내라던 선배의 충고는 인격이 빠져 무채색이 된 소대원들 앞에서 뺄 카드는 아니었다. 조금 더디고 답답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2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난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끝마다 욕이고 말보다 전투화발이 먼저 나가는 행정보급관은 나랑 친해진 후에 더욱 조기 전역을 권했다.(처음엔 나를 디스 한 거라 생각했는데, 진정 날 생각해서 해 준 말이었다.) 내가 옳다는 생각도 금세 내가 옳은 걸까?라는 의문으로 바뀐 건 비단 유원사뿐 아니라 부대 내 대부분의 간부들이 그와 유사한 언행을 보여줘서였다.

중대장 교육 후 특전사 팀장을 마칠 때까지도 내 리더십에 대한 도전은 곳곳에서 계속되었고, 난 진정 궁금했다. 그리고 내 리더십을 증명하고 싶은 객관적 기준을 찾고 싶었다. 위탁교육을 준비하려던 내게 1차 진급을 포기하라는 둥 부정적이던 선배징교에게 리더십 석사 과정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고, 급하게 진학을 결심했다. 2년간의 공부는 어쩌면 공허함을 주는 면도 있었지만, 난 이론으로 무장하고 내 리더십에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상급자들은 코 끝으로 대놓고 느물거렸다. ‘야~ 리더십이 이론으로 되는 문제니?’ 그들은 때마다 착착 챙겨 온 진급으로 쌓아온 자신의 계급이 리더십에 대한 인정이라 자부했고, 각자가 모두 리더십 교범이고 리더십의 화신이었다.

군복을 벗고 나니 또 다른 차원의 리더십의 도전이 날 막아섰다. 영업조직에서는 실적이 리더를 만들었다. 결국 리더십을 발휘할 여지도 필요도 없어진 상황에서 난 다시 리더십을 고민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새'(1988.4.1)의 첫 소절에서 난, 일반적인 곡 해석과는 사뭇 다르게, 내 속에 너무 많은 자아들 중 내가 원하는 자아를 이끌어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걸 느꼈다. 이게 안 되는 내가 누굴 이끌고, 누구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셀프리더십(리더십 이론 체계와는 결이 좀 다른)을 고민했다. 이런 고민이 의미가 없어졌다. 직업적, 경제적 측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많던 자아는 어느새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하나로 수렴되었다. 어르고 달랠 자아가 없었다. 그냥 숨고 싶고, (솔직히) 살아갈 이유가 너무 비루했다.


손자: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란다.

널리 알려진 고대 체로키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 중 마지막 대목이다.

다시 죽은 자아를 살려내고 먹이를 주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화해. 규칙적으로 운동하려는 자아, 지속적으로 독서하려는 자아, 작은 일에 감사하려는 자아,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려는 자아, 다시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자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자아에게 다시 먹이를 주고 있다. 자아를 잃고 살던 기간 동안 내가 알던 리더십, 팔로어십이 얼마나 뜬구름 같았는지, 내가 얼마나 겸손하지 못했는지 뼈아프게 배웠다. 내 속에 너무 많은 욕심, 핑계, 게으름, 겁, 그리고 나쁜 습관들. 사는 동안 조금씩 굶겨 죽이고 진정한 리더가 되련다.

지금 날 노려보는 ‘미루기’ 늑대를 눈싸움으로 제압하고 마감시간을 지키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20분 남았다. 끝. 이렇게 난 다시 괜찮은 리더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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