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연착륙 #추락 #불시착
인턴.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받은 후 임상 실습을 받는 전공의. 기간은 1년.
회사나 기관 따위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을 받는 사람. 또는 그 과정.
학생들이 기업에서 일정 기간 동안 기업 활동에 관해 체험하면서 실무 역량을 키우도록 하는 제도.
우리말로는 실습, 실습사원, 실습생, 수련의 정도로 옮겨진다. 굳이 인턴십이라는 외래어를 붙잡은 이유는 오래전 본 '인턴'이라는 영화의 영향이 크다. 이 나이에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시간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버거워 가눌 수 없을 때, '벤 휘태커'라는 이름이 떠올랐고, 막연하게 그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연착륙 vs. 불시착
3성 장군으로 나보다 먼저 예편하신 선배님은 모교강단에 서는 매일 아침,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하셨다. 경착륙… 을 넘어선 말 그대로 추락.
내 시각에서는 연착륙이었다. 아침마다 멋진 외제차를 직접 몰고 대학 정문을 통과하고, 화려한 무용담과 언변으로 어린 후배들에게 삶의 지혜와 더불어 학점도 후하게 주는 좋은 선배. 교수라는 직함. 저서가 두 권이나 있는 작가.
4성 장군으로 나보다 나중에 군을 떠난 특전사 팀장시절 여단장은 그의 특징인 큰 키 때문에 내 눈에 띄었다. 듣고 싶지도, 들을 수도 없었던 그의 근황을 TV뉴스를 통해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빨간 점퍼를 걸치고, 자기보다 작고 어린(작은 건 확실했고, 어린 건 기억의 왜곡과 개인적 감정의 합작일 수 있다) 정치인 뒤를 졸졸 따르는 꾸부정한 모습으로. 그 잠깐의 순간으로 추락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연착륙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인생의 분기점에서 지나온 직업적 연결성으로 판단하는 객관적 시각과 종종 그것과 배치되는 주관적 시각이 있을 거다.
아웃도어웨어 매장 직원, 지역의 작은 식당 홀서빙. 이건 분명 어느 쪽 시각으로 봐도 연착륙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문제는 난 아직 한창 고공비행을 할 나이라는 점. 남들은 검사를 하다 변호사로 개업하고, 대기업의 임원이 되고, 중견기업의 대표가 되는 시기에, 난 이게 생의 마지막 커리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와 울분에 시달려야 했다. 일을 배워서 동기들보다 조금 일찍 가게 하나 하면서 쉬는 날 오토바이 라이딩이나 다녀야겠다는 현실도피성 미래설계가 녹녹지 않음을 느끼면서 ‘노숙자’, ‘박스 할아버지’가 돼버린 날 상상할 때도 있었다. 불시착. 바로 그거였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나이 70. 30의 나이에 빠르게 성공신화를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가 창업한 인터넷 쇼핑몰 '어바웃 더 핏‘의 최고령 인턴사원. 40년 근속 후 맞은 정년퇴임과 아내와의 사별로 주저앉은 자존감을 찾고 싶었던 그는 연륜과 경력을 통해 몸에 밴 진정성과 친화력 강한 처세술로 나이 어린 동료들의 삼촌처럼, 줄스의 친구처럼 멘토의 역할을 멋지게 해낸다.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 그냥 종업원을 인턴으로 포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니어 인턴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난 아직 젊기에~ 하며 쿨한 척하려 한 거다. 하지만 약 2년 동안의 낯설고 거칠었던 경험이 허리디스크만을 준건 아니었다. 밴 휘태커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인턴만큼은 아니지만 B급 영화만큼의 스토리는 되지 않을까. 창피하고 아픈 기억이지만 더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