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4/일/흐리다 가끔 맑음/대만여행 2일 차
석양이 아름다운 항구도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타이중에 다녀올까 했었다. 살짝 밋밋하다는 평가에 망설이다 오징어가 튀어나왔다. ‘엄마가 단수이에 가서 오징어 튀김 먹어보랬어. 유명한 할머니 오징어집이 있데.’
단수이로 간다.
타이완섬 최북부, 단수이허의 하구 북쪽에 위치. 풍광이 맑고 아름다운 토지로 알려져 타이완 8경의 하나로 꼽히며 '동방의 베니스'로도 불렸다. 근대에는 청나라의 조약항으로서 타이완을 대표하는 항구도시이기도 했다. 명칭의 유래는 담수. 단수이구 남부를 흐르는 강인 단수이허(淡水河)와 연계된 이름이다. 한어병음(성조 생략) 표기는 Danshui지만 영어로는 Tamsui를 쓰는데 영문명으로 한어병음이나 통용병음을 쓰지 않는 드문 곳이다. 대외적으로 대만어 음차 표기인 Tamsui가 대만일치시기 이전부터 써 오던 명칭… 됐고, 어릴 적 한 때 한자 영재(자칭)였던 내 짐작으로 ‘淡水’와 ‘오징어’가 공존하는 곳이라니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일 거 같았다. 빙고!
블루-그린-레드. 빨간 노선의 종점에 도착하여 사람들이 많은 강가 쪽으로 걸으니 오래전 우리나라의 유원지 풍경이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넓은 강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각종 메뉴의 식당과 놀이, 기념품 가게들이 흐른다. 간간이 보이는 오징어 튀김 가게들. 아~ 우리 둘이 익히 알던 비주얼과 맛(시식으로 호객주이다)이다. 대만식 백반으로 아침을 든든이 먹은 관계로 일단 풍경에 집중하기로 한다. 강이 아닌 시장 쪽으로, 자연이 아닌 사람들 쪽으로. 사통팔달. 시장은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발길 닿는 데로 걸어 올라가서 시장의 끝단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대왕카스텔라! 십여 명이 줄을 선 가게. 흔한 풍경이라 지나치려는데 주인장이 들고 나온 건 중년의 뱃살처럼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커다란 빵! 모 PD님의 과단성으로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한 때 셀럽의 고향 되시겠다.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 줄의 일부가 된다. 주인장은 스테인리스 재질로 보이는 긴 빵칼과 자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지방제거 수술하는 것처럼 배에… 아니 빵에 칼로 선을 긋더니 이내 빵을 열 등분 가량 잘라낸다. 신기한 건 주인장 쪽은 배 속… 아니 빵 속에 치즈가 보이고, 먼 쪽엔 아무것도 없다. 줄이 줄기 시작하고 빵도 줄기 시작한다. 마침내 내 앞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남았고, 빵은 치즈 둘, 오리지널 세 조각이 남았다. 아주머님이 손가락 두 개를 펴든다. 내 목표는 치즈. 아주머니는 각각 하나씩 담아 가신다. 살 떨리는 순간이었다. 갓 나온 빵을 한 입씩 녹이며 내려온다. 가장 대만 스러운 식당에 들어가는데 앞서 식당 직원이 주문된 음식을 들고 간다. 슬쩍 보니 소스에 담긴 족발처럼 보였다. 아들이 그 요리와 밥, 만두를 주문했다. 족발이 아니었다. 유부 안에 얇은 면이 가득 찼다. 대만 스런 향과 맛. 이것저것 둘러보고, 참견하고, 다시 바다와 만나는 하구 쪽 아기자기한 카페들을 사열하고 다시 마주한 오징어튀김 가게. 패스. 저녁은 스린 야시장에서 먹기로. 이어지는 소식인들의 먹방. 소고기 스테이트, 수박주스, 딸기주스, 새우달걀볼, 지파이. 그리고 편의점 맥주까지 오징어 먹으러 갔는데 오징어 빼고 다 먹고 온 느낌. 사전 지식도, 검색도 없이 얄팍한 지식 한주먹에 쥐고 돌아다닌 용감한 하루. ‘博學多識’ 아닌 ‘薄學多食’했던 오늘.
p.s. 단수이는 석양이 아름다운 항구도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배경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방금 검색으로 알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