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나는 나를 버려야 하는 줄 알았다. 외모, 성격, 생활습관, 공부와 일에서의 성취도, 관계 등 모든 게 그 학교에 있는 친구들에 비해 모자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닌 내 옆에 있는 친구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다양한 볼펜을 써가며 필기하던 방식을 샤프만 쓰던 친구의 방식으로 바꾸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교과서에 밑줄을 긋는 친구를 따라 나도 밑줄을 그었다. 아침 일찍 기상하여 자습을 하던 친구를 따라 새벽 자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첫 학년은 어찌어찌 성적이 오르며 끝이 났다. 그렇지만 2학년과 3학년이 되면서 깊은 수렁에 빠진다. 아마 부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선호하지 않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생각은 무엇인지, 행동은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척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척했다. 그 당시 시크릿이라는 책을 알려주었던 친구를 따라 그렇게 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원하는 대론 되지 않았다. 속은 더 썩어 문드러졌다.
이 시절의 내가 너무 안쓰럽다. 나를 버리는 것만을 방법으로 알고 있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이걸 그 당시의 누군가에게 말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내가 힘들었는지도 몰랐으니까.
요즘의 나는 고등학교 때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남들이 좋다는 것보다 내가 좋다는 것에 집중한다. 과거에 좋았던 소설을 다시 읽고, 그냥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작고 소중한 문구류들을 산다. 여러 색깔의 펜을 구비해두고 끌리는 대로 사용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를 받아들이고 깨어있는 시간에 할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부담스러우면 안 하는 나를 위해 작게 작게 시작한다. 선호하지 않는 감정이 들어도 생각이 들어도 그대로 허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훨씬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감정의 파도는 요동친다. 기분이 좋았다가도 사소한 일에 팍 다운이 된다.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이고 내 마음이 왜 그런지 써본다거나,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떠올리고 행동하면서 산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살아가며 그런 선택을 하기 참 쉬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에게 물어보고 답을 지어보고 나를 관찰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내가 날 버린 이유라는 곡에서 제목을 차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