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 Nov 17. 2021

흘러간다

흘러간다. 그냥.
 가지지 못하더라도, 버리지 못해도, 비참해도,
 그 순간들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더라도,
 초조함에 일상이 반쪽짜리가 된 것 같더라도,
 그런 내 모습을 견딜 수 없더라도,
 흘려보내면 안 될 것만 같더라도,
 아랑곳 않고 정박자로 흘러간다.
 불만족된 순간들이 계속 지나간다.
 붙잡고 늘어져 목 끝까지 쑤셔 넣어야 할 것 같지만, 흘러간다. 그냥.
 지나가는 그림자만 보고 있다.
 고개를 들면 그건 또 다른 세상이다.
 한번, 두 번, 세 번. 눈을 깜박이는 동안 세상이 빛바래져 간다.
 원한적 없다고 다그치는 스스로의 변명에 코웃음 친다.
 부끄러움에 눈을 질끈 감는다. 보지 않았다 한다.
 눈을 뜬다. 나는 흘려보낸 적 없다. 그래도 흘러간다. 그냥.
 내가 없는 것 마냥 흘러간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