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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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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Nov 18. 2021

시간의 조각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숨 속에 계속 살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란 나무처럼 곧잘 슬퍼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빛을 먼저 받아내었고 숨을 먼저 내쉬었으며, 첫 번째 길목에 내 자리를 만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더 뿌리를 깊게 내릴수록 나는 봄을 더 성급히 기다렸다.
미신을 믿듯, 그렇게 나는 봄을 기다렸다.
벌써 내게 스며든 것도 같은데 공기가 차가웠다.
그것이 흡수되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순순히 인내했다.
발버둥 치는 것은 숙명일 수밖에 없는 것 일까.
주어진 위로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받아내기엔 상그러웠다.
그러나 그 어느 다른 날, 그 어느 같은 날, 공존하고 있는 그 시간, 그 순간들.
뿌리를 거쳐 줄기, 가지, 잎이 되어 기다란 나무가 그러하듯 꽃 피우겠지.
그럼 나는 흘러간 시간의 조각들을 거둘 수 있을 거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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