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기가 동그란 찻잔을 감싸고돈다
찻잔은 미적지근한 온도를 품어내어
차갑게 식어갈 운명을 맞이하려 한다
새하얀 손이 찻잔을 감싸고돈다
찻잔은 다가올, 혹은 다가온 운명으로
입술을 적시려 한다
붉게 식어간 것들이
붉고 따듯한 것을 침범한다
그곳엔 오래된 장미가 놓여있다
삼켜낸 붉은말들은
목구멍에 들러붙어
식어간 것들을 다시 일깨워준다
한 모금 더 들이켜보니
이대로도 괜찮을 것도 같다
이대로 식어가도.
그렇게 많은 것들이 그립지는 않아
그래서 그런 것도 같다
그래서 붉은 것들을 또 비워낸다
입술에 맺힌 것들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물들인다
마침내 시야가 붉게 물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