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소매가 휘날린다
새하얀 손목이 문득 드러난다
바람이 모든 걸 앗아간다
그가 떠난 자리를
눈 껍데기로 바라본다
아, 황망하다 할 듯도 싶다
스스럼없이 일어선다
결국엔 넘어질 수 있어서다
빠알간 피가
새파란 멍이
새하얀 피부에 베인다
시간은 그들의 색을 조금씩 앗아가며
이죽거리고 있다
사라진 꿈,
그것은 잔뜩 물러져서는
썩은 과일의 달큼한 향을 풍긴다
나는 그 꿈을 얼른 주워다
솜털이 남아있는
어리고 보드라운 볼에
갖다 대고 짓이긴다
다시 날리는 소맷자락
그 소리가 시야를 앗아간다
옷을 걸친 이들이
옷을 입은 이들을
원망스레 바라본다
눈을 감아버린다
어떤 원망도 하기 싫어서다
그저 바람에 날리고 날려
희미해지길
언듯 언듯 떠올릴 뿐이다
한참 물기없는 허공, 그 속에서.